[日에 밀린 유네스코 외교戰]
박형준·도쿄특파원
섬 안에는 폐허가 되어 버린 4∼10층짜리 아파트가 여기저기 솟아있었다. 창문은 모두 깨져 있었고 일부 건물은 곧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나가사키 주민들조차 ‘하시마’라는 이름 대신 ‘군칸지마(軍艦島)’라고 부르는 이 섬은 현재 무인도다.
나가사키 시는 2009년 4월부터 이곳에 관광을 허용했다. 기자가 찾았을 때 만났던 가이드 고바타 도모지(木場田友次·75) 씨는 과거 이곳에서 살았던 일본인 노동자였다. 그의 말이다. “바다 밑 해저에서 질 좋은 석탄이 쏟아져 나오자 미쓰비시(三菱)광업은 일본 전역에서 노동자들을 모집했다. 태평양전쟁 때는 한국인과 중국인까지 징용했다. 채굴이 한창이었을 때는 5300명이나 살았지만 석탄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1974년 모두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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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보다 훨씬 위험한 곳에서 일했다. 바람이 강한 날에는 숙소까지 물이 튀어 들어왔다. 일하면서 맞아 죽고 탈출하다 죽는 사람도 많았다.”
자료에 따르면 조선인들은 좁은 갱내에서 구부려 걸으면서 석탄을 캤고 대바구니에 가득 채운 석탄을 100∼200m를 기어서 날랐다고 한다. 탈출하다 붙잡히면 거꾸로 매달아 솔잎을 태워 그슬리는 가혹한 징벌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흔한 관광안내 책자에서조차 이런 어두운 역사를 적은 대목은 찾아볼 수 없었다.
기자가 관광객들에게 ‘왜 구경 왔는지’ 물어보니 “007 영화를 이곳에서 찍었는데 실제 장소를 보고 싶어서 왔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거라고 해서 보러 왔다” 같은 답이 돌아왔다. 지금도 군함도 관광안내 책자는 그대로이다. 관광안내서에라도 어두운 역사를 기록하는 정직함이야말로 지금 일본에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군함도를 생각하면 그때 섬을 떠나올 때 그 마음처럼 무거워진다.
박형준·도쿄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