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규 감독의 달라진 영화 ‘장수상회’
영화 ‘장수상회’는 반전이 숨겨진 영화다. 몇몇 관객은 금방 눈치채기도 하겠지만, 그게 극의 몰입을 방해하진 않는다. 뻔한 줄 알면서도 울컥하게 만든다. 세월이란 이름이 지닌 무게처럼. 성칠(박근형)과 금님(윤여정)은 벤치에 앉아 젊은 연인들처럼 이어폰을 나눠 끼고 음악을 듣거나(위 사진), 함께 춤을 추며 사랑을 나눈다(아래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강제규 감독(53)은 한국영화 흥행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은행나무 침대’(1996년), ‘쉬리’(1999년),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 등 내놓는 작품마다 신드롬을 일으켰다. 특히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효시로 꼽히는 ‘쉬리’는 한국 영화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2011년 ‘마이 웨이’는 반응이 신통찮았어도, 강 감독 하면 언제나 대작이 떠오른다.
그가 4년 만에 새 영화를 들고 나왔다. 다음 달 9일 개봉하는 ‘장수상회’다. 70대 평범한 노인들의 사랑 얘기를 다뤘다. 블록버스터 감독으로 꼽혀 온 강 감독은 변두리의 흔하디흔한 마트에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을까.
○ 화려한 전투 대신 따뜻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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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상회’는 외연만 놓고 보면 히트할 조건이 풍족한 작품은 아니다. 두 주인공이 tvN 예능 ‘꽃보다 할배’와 ‘꽃보다 누나’로 ‘핫’한 배우지만 티켓파워를 지녔다고 말하긴 힘들다. 조진웅 한지민이 출연하지만 조연에 그친다.
순제작비는 37억 원. 지난해 상업영화 1편당 평균 순제작비 43억 원보다 적은 것은 물론이고 전작 마이웨이 280억 원에 비하면 매우 약소한 금액이다. 당연히 눈길을 사로잡을 총질이나 칼싸움도 없다.
허나 장수상회는 ‘알면서도 당하는’ 확실한 무기를 품고 있다. 바로 박근형과 윤여정이란 배우다. 특히 기자간담회에서 “1950년대 청년 연극학도 때로 돌아간 심정으로 연기했다”고 술회한 박근형은 이제 겨우 봄이지만 일찌감치 ‘올해의 남우주연상’에 강력한 후보로 올릴 만하다. 버럭버럭 온갖 성질을 부리면서도 마음 한편에 지닌 따뜻함을 은근슬쩍 들키는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네 아버지. 윤여정 역시 연기를 쥐락펴락, ‘천의무봉(天衣無縫)’이다. 두 배우는 1971∼72년 방영한 MBC 드라마 ‘장희빈’의 숙종과 장희빈 이후 43년 만에 연인으로 재회했단다.
○ 사랑은 그저 사랑일 뿐, 그래서 더 아름다운
강제규 감독의 ‘변신’은 사실 지난해 단편 ‘민우 씨 오는 날’로 전초전을 치렀다. 28분짜리 짧은 분량이지만 애절한 사랑 얘기를 짜임새하게 담아냈다. 자신의 모든 걸 잊어가면서도 오랜 연인 민우(고수)를 기다리는 여인 연희(문채원 & 손숙)의 이야기. 다소 정형화된 방식이긴 했어도 울림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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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또다시 찾아온 노년의 사랑에 관객들은 얼마나 반응할지. 지난해 조병만 강계열 부부를 담은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480만여 명이 봤다. 박근형과 ‘꽃보다 할배’에 같이 출연하는 이순재 주연의 2011년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저예산(11억 원)인데도 164만여 명이 관람했다. 장수상회는 국제시장 꽃분이네만큼 장사가 잘될까. 다음 달 23일 ‘어벤져스’의 미국산 초인들이 몰려오기 전에. 12세 관람가.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