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 특파원 현지 르포 2信
게시판 뒤덮은 추모 쪽지 24일 이스타나 대통령궁 앞 분향소에 조문객들이 남긴 추모의 글과 꽃다발이 빼곡하게 놓여 있다. 싱가포르=이설 기자 snow@donga.com
게시판 뒤덮은 추모 쪽지 24일 이스타나 대통령궁 앞 분향소에 조문객들이 남긴 추모의 글과 꽃다발이 빼곡하게 놓여 있다. 싱가포르=이설 기자 snow@donga.com
안내를 맡은 공무원(군인)들은 분향소가 붐비지 않도록 추모객들을 다섯 명씩 끊어 들여보냈다. 함에 메모지가 가득 차면 일일이 꺼내 내용이 괜찮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판 앞뒤(한 면에 54개씩)에 질서정연하게 꽂았다. 한 안내원은 “오늘 아침까지만 메모지가 벌써 2만 장 가까이 나갔다”고 말했다. 게시판에 가로세로로 나란히 꽂힌 메모들은 깨알같은 글씨로 긴 사연을 담은 것도 있었고 짧게 고인에 대한 추모 내용을 적은 것들도 많았다.
‘싱가포르를 위한 당신의 일생에 걸친 헌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분향소 앞에서 만난 리안 핑 씨(58·주부)에게 “싱가포르의 ‘메모 분향’이 특이한 것 같다”고 기자가 말을 건네자 “글로 차분하게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질서를 좋아하는 우리 싱가포르인들에게 맞는 추모 방식인 것 같다”고 답했다.
싱가포르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슬픔에 잠겨 있다. 한낮 평균기온이 31도나 될 정도로 덥고 습한데도 추모 열기는 시간이 갈수록 달아오르고 있다. 대표 일간지 스트레이츠타임스는 24일자 지면 전체를 리 전 총리 업적과 살아온 길을 소개하는 기사로 채웠고, 공항 지하철 버스터미널 식당 등에 설치된 TV에서는 추모 특별방송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다민족 사회(중국계 75%, 말레이계 13%, 인도계 12%)답게 TV에서는 중국계를 비롯해 히잡(무슬림 여성들이 쓰는 가리개)을 쓴 말레이계, 터번을 쓴 인도계 주민들의 인터뷰가 번갈아 나왔다. 노동조합 연합체인 전국노동조합(NTUC) 조합원들도 이날 1분간 묵념하는 행사를 하기도 했다.
분향소 앞에서 만난 난양이공대(NTU) 학생 로널드 림 씨는 “한국 기자까지 이렇게 취재를 오고 외신들도 그의 죽음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는 것을 보고 조국과 ‘파운딩 파더(founding father·건국의 아버지)’에 대해 더 강한 자부심을 느끼게 됐다”며 “언론을 통제하고 일당독재나 다름없이 정치적 다원주의를 배척한 점 등은 오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엔 너무 가난해서 모든 걸 돌볼 여력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조문객 이안 왕 씨(68)는 “싱가포르 청년들도 ‘리콴유 키즈’라 그의 업적을 대략은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싱가포르=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