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하던 일을 그만 둔 김모 씨(36·여)는 생계 고민에 빠졌다. 그때 내연남인 최모 씨(35)가 은밀한 제안을 했다. 자신이 보이스피싱 관련 일을 하는데 국내에서 대포통장을 모집해 중국 총책에 건네면 그 대가로 쏠쏠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다음달 김 씨는 중국 총책에게서 받은 1000만 원으로 서울 노원구에 사무실을 차리고 친언니(39)도 끌어들였다. 대부업체를 사칭해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를 걸어 “신용등급을 올리기 위해서는 통장이 필요하다. 통장을 보내면 대출 해줄 것”이라며 통장을 수집했다. 김 씨 자매는 지난해 11월~올 2월까지 통장 132개를 중국 총책에게 전달했다. 그 대가로 3121만 원을 받았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김 씨 자매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고 22일 밝혔다.
최근 대포통장만을 전문적으로 모집해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돈을 받고 넘기는 기업형 통장모집 조직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통장을 빌려준 사람도 처벌하는 등 처벌 규정이 강화돼 대포통장 수집이 어려워지자 대출업체나 구인 업체를 사칭해 통장을 모으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최근 한 달간 집중단속을 벌여 총 54명을 적발했으며, 이 중 33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단속 건수는 총 27건이며 피해금액은 24억3000여만 원이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