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철거민연합 2명 두달째
소음기준치 75dB 밑도는 74dB로 온종일 확성기 시위 16일 서울 중구 순화동의 한 주상복합건물 앞에 현수막이 어지럽게 걸려 있다. 이 건물과 전혀 상관없는 농성 참가자들이 내건 현수막인데도 건물주가 제거할 수 없다. 박은서 기자 clue@donga.com
18일 오전 8시경. 서울 중구의 한 주상복합건물 뒤편에서 투쟁가요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졌다. 함께 걷던 옆 사람의 말도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시끄러웠다. 이 건물 2층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박모 씨는 “식사하던 손님들이 소음 때문에 짜증을 내고 어지럼증까지 호소한다”고 토로했다.
입주민들이 소음 피해를 본 지 두 달째. 1월 18일 전국철거민연합 소속 남녀 2명이 건물 뒤편 롯데건설 공사장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롯데건설은 2013년 8월부터 이곳에서 ‘도시환경정비사업’을 벌이고 있다. 농성자들은 주거·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오전부터 오후까지 투쟁가를 켜고 끄기를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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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주최 측이 곳곳에 내건 현수막도 골칫거리다. 경찰청 맞은편인 이 건물 앞쪽에는 ‘살인개발 이제 그만’ 등이 적힌 3m 높이 만장 5개, 너비 4.6m의 플래카드 등이 걸렸다. 건물 왼편에는 투쟁 문구가 적힌 형형색색의 띠가 28m 길이로 죽 늘어져 있다. 마치 상갓집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이 역시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쳤지만 제재가 불가능했다. 중구 관계자는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에 따르면 정치활동을 위한 집회에 현수막을 설치하는 것은 제한할 수가 없다”며 “이런 집회는 신고만 하면 사유지라도 현수막 설치를 제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집회 주최 측은 공사장 앞에 있는 건물 세 개를 아우르는 장소에 24시간 집회신고를 한 뒤 계속 기간을 연장하고 있다.
주민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건물 관리원 최모 씨(33)는 이달 8일 건물 앞 현수막을 임의로 떼어내 창고에 보관했다. 하지만 집회 주최 측이 경찰에 도난 신고를 하면서 최 씨는 ‘재물손괴’ 혐의로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입건돼 수사를 받고 있다. 사유지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물건을 임의로 제거해 보관하면 법리상으로는 재물손괴죄가 성립된다.
건물 관계자는 “농성자들이 도리어 우리에게 ‘법대로 하라’고 말하는 실정”이라며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제대로 보호도 받지 못하는 걸 보니 법도 아무 소용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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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건설 관계자는 “보상 문제는 우리와 관계가 없다. 농성자들이 ‘우리는 피해자다’ ‘억울하다’라고 하는데 구체적인 요구는 말 안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농성자들은 인터뷰를 거절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