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아가사는 추리소설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의 실제 실종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캐릭터들의 복잡하게 얽힌 내면묘사가 마치 심리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준다. 아가사로 분한 최정원(오른쪽)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사진제공|아시아브릿지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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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아가사’
초연 비해 친절…새 넘버·달라진 무대
딱딱하고 빠른 전개…초보자에겐 비추
아가사 역 맡은 최정원 노래·연기 일품
묵직한 주제, 여전히 가칠가칠한 스토리 전개, 도처에 지뢰처럼 깔린 상징과 복선. 마치 작가 김훈의 문장처럼 딱딱하고, 빠르면서 적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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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사는 추리소설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의 실제 실종사건을 다룬 뮤지컬이다.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11일간의 실종 미스터리를 픽션으로 풀어냈다. 뚝뚝 끊어놓고 매듭을 관객에게 던졌던 초연에 비해 ‘비교적’ 친절해진 것이 눈에 띈다. 이 덕분에 관객은 스토리를 따라가기 위해 머리를 덜 혹사시켜도 된다.
딱딱한 의자 같은 작품이라 ‘안락한 관람’은 쉽지 않다. 뮤지컬 초보자에게는 선뜻 권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딱딱한 음식이 대부분 그렇듯, 대신 ‘씹는 맛’이 있는 작품이다. 아가사와 아가사의 또 다른 내적 자아로 여겨지는 ‘로이’의 관계를 따라가는 재미는 이 작품을 제대로 ‘씹는 맛’이다.
사랑이 식은 남편, 끊임없이 아가사의 사생활을 들춰내는 기자, 내심 아가사를 무시하는 출판사 편집장, 아가사에게 어머니와 같은 존재지만 또 다른 속을 갖고 있는 늙은 하녀, 남편의 불륜상대인 여비서 등 아가사를 둘러싼 인물들도 흥미롭다.
이야기를 씨 뿌리듯 사방에 던져대는 1막보다는 풀린 실타래를 빠르게 정리해 나가는 2막이 더 좋다. 1막에서 강요당한 뇌 근육의 긴장감은 2막에 들어서면서 탁 트인 광야로 달려나가는 듯한 쾌감으로 전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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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작품은 엔딩이 좋다. 아가사는 ‘미궁’으로 상징된 인생의 깨달음을 예의 툭 던지는 방식으로 관객에게 내놓는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400페이지짜리 심리소설 한 편을 읽고난 기분이 들게 된다. 씹을수록 묘한 맛이 올라오는 작품, 며칠이고 그 느낌, 그 맛을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초심자보다는 ‘뮤지컬 좀 봤다’는 관객에게 추천하고 싶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트위터 @ranbi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