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2013년 초 현 정부가 들어설 무렵 많은 전문가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국의 닉슨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하였다. 이념적 보수성을 정치적 자산으로 적극 활용하여 진보 성향의 지도자가 하지 못했던 미중 수교의 길을 닦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교훈에 빗댄 희망이었을 것이다.
사실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이후 북한에 대한 우리 국민의 시선은 상당히 우경화되었다. 어쨌든 이런 북한을 상대로 누군가 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면 그 과정에서 정치적 부담감은 매우 막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런 걸림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정치 지도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본다.
박근혜 정부의 신뢰 프로세스는 남북한 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을 신뢰라는 요소를 통해 펼쳐 나가겠다는, 매우 창의적인 문제의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만 따져 보더라도 20년이 넘게 보수와 진보 정권이 번갈아 가면서 다양한 대북 정책을 전개했지만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토록 하는 데에도, 또 개방의 문을 열고 변화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데에도 실패하였다. 왜 그럴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하고 있다.
북한을 상대로 한 약속이나 합의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통일에 대한 우리 국민의 열망이 없어서도 아니다. 한반도 통일에 대한 국제사회의 무관심을 탓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남북한 사이에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의미다. 물론 북한을 상대로 신뢰를 쌓는다는 게 가능하냐는 비판이 없지 않았으나 북한을 상대로 무엇인가를 주고받는 거래 관계가 아니면서, 동시에 후퇴와 파기가 반복되지 않는 견고한 평화를 만들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창의적인 문제의식은 아직까지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집권 3년 차를 맞이하여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첫째, 신뢰의 형성은 불가피하게 상호주의 성격을 가진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해 신뢰를 쌓는다는 것은 상대방을 전제로 한 원칙이므로 향후 남북대화는 물론 6자회담 재개 등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에서 전략적 융통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셋째, 북한이 도발이 아닌 정상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자극점을 찾아내야 한다. 예를 들어 작년 이후 인권 문제 제기의 효율성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초기 단계에서 북한이 보인 대외적 반응은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전통적인 외교전이었다. 이처럼 북한이 도발이 아닌 보편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이슈가 무엇인지를 개발해 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신뢰 프로세스를 북한이 환영하면서 박수칠 것으로는 기대하지 않았다. 아무리 우리의 의도가 지선(至善)이어도, 북한은 무조건 자기를 체제 전환시키려는 의도로 해석할 것이기 때문이다. 골든타임을 활용한 의미 있는 성과는 정교한 리더십, 국민적 합의, 경제적 안정, 국제사회의 응원이 맞물려야만 비로소 빚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박근혜 정부의 남은 3년 동안 신뢰 프로세스의 향배는 온전히 지금부터의 매우 정교하고 생산성 높은 정책 개발에 달려 있다고 본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