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락 기자·사회부
소녀상이 울산대공원 동문(東門)에 세워지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울산시 태도가 수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울산에 소녀상 건립이 추진된 것은 지난해 11월. 올 1월에는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등 30여 개 시민단체가 운동본부를 만들었다. 울산 북구 ‘박상진 호수공원’이 소녀상 건립 적지로 거론됐다. 이 공원은 초대 광복회 총사령관을 지낸 울산 출신 고헌 박상진 의사(1884∼1921)를 기리기 위해 조성됐다. 박 의사 동상 인근에 소녀상을 세우면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를 더 크게 담을 수 있을 것으로 본 것. 시민운동본부 대표는 1월 22일 북구청장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북구는 ‘공원조성계획을 변경해 소녀상을 세우면 타 단체의 시설물 설치 요구가 난립할 우려가 있다’며 불가 공문을 2월 2일 보냈다.
시민운동본부는 소녀상 건립을 위한 모금과 함께 후보지 4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울산대공원이 가장 높았다. 시민운동본부는 울산대공원에 소녀상 건립을 요구하는 공문을 시에 보냈다. 6만여 명의 서명과 5000여만 원의 성금도 모였다. 시의 2월 17일 공식 답변은 ‘(소녀상 건립은) 정부의 권장 사항이 아니며, 자치단체가 독자적으로 판단하면 정부의 외교 정책에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여성가족청소년과), ‘타 단체와의 형평성 때문에 울산대공원 설치는 어렵다’(녹지공원과)였다.
소녀상 건립 과정에서 울산시 등 상대 여건을 고려하지 않는 시민운동본부의 아집도 개선이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울산시의 불통과 무원칙 행정은 더 큰 문제였다. 다른 자치단체는 물론 미국에도 세워져 있는 소녀상 아닌가. 외교정책 운운하다 떠밀리듯 시민단체의 요구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었다.
정재락 기자·사회부 ra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