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영 경제부 차장
김 행장의 사퇴를 가장 안타깝게 생각했던 사람이 윤종규 당시 국민은행 부행장(현 KB금융지주 회장)이었다. 윤 부행장은 “말이 안 되는 결정에 왜 행장님이 물러나느냐”며 김 행장을 만류했지만 소용없었다. 윤 부행장은 김 행장과 함께 사퇴했다.
KB금융은 유독 외풍에 심하게 흔들려 왔다. 주택은행과 통합된 이후 임명된 수장 가운데 제대로 임기를 마친 사람은 사실상 어윤대 전 회장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감독당국의 징계를 받아 중도에 물러났다. 연임을 한 CEO는 아무도 없다. 국민은행장 또는 KB금융 회장 자리를 전리품 정도로 여기는 정권은 임기가 채 끝나지 않은 CEO를 흔들어 내쫓은 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낙하산’을 내려보냈다. 미래를 내다보는 비전이 담긴 경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이사회에 참여하는 사외이사들은 정권이나 경영진에 휘둘리지 않고 투명하고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사외이사의 전문성과 권한을 확대하는 이번 개혁안의 방향은 옳다. KB금융은 얼마 전 최영휘 전 신한금융 사장, 유석렬 전 삼성카드 사장, 김유니스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 등 7명의 사외이사 후보를 확정했다. 면면을 보면 외부 세력이나 KB 경영진에 휘둘릴 만한 인물들은 아니다.
문제는 경영 승계 프로그램이다. 경영의 연속성을 위해 현직 회장이 연임을 원할 경우 연임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이다. 경영실적 등 재무 성과와 고객만족도 등 비재무 성과가 좋으면 현직 회장은 연임이 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윤종규 회장이 벌써부터 연임 욕심을 내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윤 회장은 이런 지적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에게 “금융회사는 감독당국 앞에서는 ‘부처님 손바닥’이다. 내가 욕심을 낸다고 감독당국이 두고 보겠느냐”고 말했다. KB 안팎에서는 윤 회장이 무리한 욕심을 낼 사람은 아니라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한번 맛보면 다시는 놓고 싶지 않은 게 권력의 속성이다. 윤 회장 스스로 권력욕에 빠지지 않도록, 지배구조 개혁을 권력 연장의 방편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항상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 KB금융의 지배구조 개혁은 KB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관치금융과 정치금융에 안주해 온 한국 금융산업을 혁신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윤 회장이 지금도 그리워하는 고 김정태 행장이 꿈꿨던 것처럼.
신치영 경제부 차장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