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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점 100원 화투’ 도박일까 오락일까

입력 | 2015-02-24 03:00:00

설연휴 ‘판돈 3만원’ 친구 5명 검거
무직 2명에 나머지는 도박 전과… 경찰 “상습범 입건” “훈방” 엇갈려
법원 판결도 사안따라 달라져




A 씨: 재미 삼아 ‘점당 1만 원’ 화투를 친 대기업 회장

B 씨: 상습적으로 ‘점당 100원’ 화투를 친 일용직 근로자

화투를 치다 경찰에 적발됐을 때 A 씨와 B 씨 가운데 누가 처벌을 받을까? 판돈 규모는 A 씨가 크지만 처벌 가능성이 높은 쪽은 B 씨다. 고정된 수입이 없고 상습적이라 사행성이 더 심한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대기업 회장이 점당 만 원짜리 화투를 친 것을 도박으로 볼지는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 하지만 B 씨는 입건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는 도박죄 성립 기준을 ‘일시적 오락’ 여부로 정하기 때문이다. 소득 대비 판돈을 고려했을 때 일용직 근로자의 하루 일당이 걸린 B 씨의 화투판을 단순히 ‘오락’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점당 100원’짜리 화투에 관한 의견도 경찰관에 따라 제각각이다. 도박 혐의로 입건된 피의자들이 억울함을 주장하는 이유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전기수리업자 최모 씨(55)가 바로 이 경우다. 최 씨는 22일 오후 집 근처의 한 쌀가게에서 동네 친구 4명과 함께 점당 100원짜리 고스톱을 쳤다. 2시간쯤 지났을 무렵 이웃 주민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쌀가게로 들이닥쳤다. 최 씨는 “쉬는 날 심심풀이로 화투를 쳤을 뿐”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경찰은 단호했다. 일행 중 2명이 무직이었고, 최 씨를 포함한 3명에게 도박 전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경찰이 압수한 판돈은 3만1600원이었다.

이 사건에 대한 경찰관들의 의견도 엇갈렸다. 강서구의 한 지구대 경찰은 “도박 전과가 있더라도 판돈 3만 원 정도면 훈방을 하는 편이다. 최 씨 일행의 경우 도박죄로 입건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영등포구의 한 지구대 팀장은 “도박 전과가 있는 데다 상습적으로 화투를 쳤다면 입건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의 혼란은 재판부의 판결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2009년 ‘점당 100원’의 술내기 화투를 친 혐의로 기소된 이모 씨(79)는 1심에서 상습 도박 혐의가 인정돼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점당 100원은 규모가 크지 않고 술내기를 위한 일시적 오락이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점당 100원, 3만 원대 판돈’이더라도 재판부에 따라 유·무죄 판단이 다르다는 얘기다.

서울 구로경찰서 남왕석 형사2팀장은 “조사하는 측에서는 현장에 출동한 지구대의 첫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법과 현실의 괴리라고 보면 된다. 억울한 경우라면 재판부의 선처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원모 onemore@donga.com 박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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