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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드 폭풍 주방일-잔소리에… 워킹맘 “休~지친다 지쳐”

입력 | 2015-02-23 03:00:00

[직장인 공감백서 맞아, 맞아]출근 생각 간절한 설 연휴




결혼 11년 차인 유통업체 차장 황초인(가명·40·여) 씨는 이번 설 명절에도 혼자 차례상을 차렸다. 시어머니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 종갓집 외며느리인 황 씨가 이번 설 차례상에 올린 떡국은 무려 11그릇. 고조부와 증조부를 비롯해 자손이 없는 다른 시댁 어른들까지 챙겨야 했기 때문이다.

남들은 최장 9일 연휴에 해외여행까지 간다지만 황 씨는 연휴가 길어질수록 더 힘이 든다. 올해도 제사가 끝나자마자 시누이 4명의 가족들이 차례대로 집에 오는 바람에 연휴 내내 삼시세끼를 차려 대접해야 했다. 황 씨의 친정 방문은 이번에도 뒷전으로 밀렸다.

○ 명절만 되면 ‘죄인’ 되는 워킹맘


황 씨는 명절 전날에도 야근을 했다. 그런 그에게 남자 직원들은 “전을 부치지 않으려고 일부러 늦게 들어가는 거냐”고 물었다. 연휴가 끝나면 출근할 생각에 해방감이 들 정도인 그의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나온 말이었다. 황 씨는 “연휴가 끝나는 게 반갑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연휴 동안 너무 신경을 많이 쓴 탓에 두통과 몸살 같은 후유증에 시달린다”고 털어놨다.

명절 전후 받게 되는 각종 스트레스와 후유증을 일컫는 ‘명절병’은 직장인에게 또 다른 고통이다. 특히 회사 일뿐만 아니라 집안 대소사까지 모두 챙겨야 하는 워킹맘에게 명절은 차라리 없었으면 하는, ‘무늬뿐인 휴일’이다. 평소 하지 못한 며느리 노릇을 명절에 하길 바라는 집안 어른의 기대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차례 등 명절 준비는 여자가 도맡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최근 광주 지역 주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조사에서는 ‘남편이 명절에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응답(54%)이 절반을 넘었다.

임신 8개월에 접어든 직장인 김미안(가명·33) 씨는 “평소 시댁에 첫째를 맡기는 까닭에 명절 기간 내내 힘들다는 소리 한 번 못하고 소처럼 일만 했다”며 “일하는 며느리는 명절이 다가오면 유독 죄인이 되는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 직장인 “설 연휴 부모님 용돈 부담”

다행히 최근 몇 년 사이 남성의 명절 기간 가사참여율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남성 직장인의 명절병도 심해지는 추세다. 특히 올해는 연말정산 파동에 따라 ‘13월의 월급’이 사라지며 명절 전부터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직장인이 많이 늘었다. 지갑은 예전보다 가벼워졌지만 부모님께 해마다 드리던 용돈을 줄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봄에 결혼한 이구멍(가명·38) 과장은 이번 설 상여금으로 100만 원 남짓을 받았지만 연말정산 환급액으로 50만 원 이상을 토해내야 한다. 그는 결혼 후 첫 설날인 만큼 양가부모님께 잘 보이고 싶었지만 ‘가용 예산’이 줄어든 데다 고향에 내려갈 차비 부담이 커 부모님께 드릴 용돈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다른 형제나 친척과 비교되지 않도록 더 잘 챙기고 싶었는데 그렇게 못해 드려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이런 추세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이달 16일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발표한 ‘설 명절 지출 계획’ 설문조사에서는 조사 대상인 직장인 965명의 평균 지출 비용이 지난해(평균 36만1000원)보다 줄어든 35만 원으로 나타났다. 설 연휴 지출 때문에 부담을 느낀다는 사람은 61.8%였고, 이들 가운데 27.2%는 ‘매우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부담이 가장 큰 항목으로는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과 선물’이 꼽혔다. 10명 중 1명(12.9%)은 지출 부담 때문에 명절 귀성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 명절병 부추기는 잔소리

한편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에 빠지지 않는 게 있다. 바로 듣기 싫은 잔소리다. 대부분 안부 인사로 건네는 말이지만, 당사자에게는 각종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비수가 된다. ‘사람인’이 직장인 15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설 연휴 때 가장 우려되는 것’으로 잔소리(26.7%)가 가장 많이 꼽혔다.

잔소리의 레퍼토리도 뻔하다. 최근 늦은 나이에 결혼한 직장인 우지각(가명·39·여) 씨는 남편과 함께 집안 어르신을 보러 갔다 마음이 상했다. ‘얼굴이 좋아졌는데 임신했나’ ‘내년에 아기가 태어나도 늦었다’ 등 임신·출산과 관련된 질문과 우려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우 씨는 “예전엔 결혼을 재촉하는 말이 많아 오랫동안 가족모임에 나가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전보다 더 못 나갈 것 같다”고 말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