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새로 만난 사람이 ‘정말로 의미있는’ 여자이기를 기대하면서도(그런 기대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동시에 한정된 카드를 인생의 너무 이른 단계에서 다 써버릴까봐 겁이 나기도 했던 것이다. -도쿄기담집 중 ‘날마다 이동하는 콩팥 모양의 돌’(무라카미 하루키·비채·2014년) 》
소설 속 주인공 준페이는 여자를 만날 때마다 저런 고민을 한다. 아버지의 말 때문이다. 아버지는 준페이가 열여섯 살 때 “남자가 평생 동안 만나는 여자 중에 정말로 의미 있는 여자는 세 명뿐이다. 그보다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다”고 단언했다.
준페이는 대학교 때 사귄 애인 중 한 명이 ‘첫 번째 의미 있는 여자’라고 확신한다. 그렇다면 그에게 남은 ‘의미 있는 여자’는 두 명뿐이다. 의미 없는 여자에게는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 보니 여자를 만나면 그녀가 ‘의미 있는 여자’인지 알아내려 노력한다. 아니다 싶으면 이내 시큰둥해지고 자연스레 상대와 멀어지게 된다.
준페이와 뭇사람들의 행동이 틀린 행동이 아니려면, 우선 ‘의미 있는 사람을 만날 기회는 제한적’이라는 전제가 맞아야 한다. 솔직히 아니라고 말하긴 힘들 듯하다. 또 하나, 전제돼야 할 것은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명제다. 내가 상대방을 바꾸기는 힘드니, 그저 상대방이 원래부터 좋은 사람이었길 바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준페이와 그의 아버지는 꽤나 합리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하나 간과한 게 있다. 내가 남을 바꾸기는 힘들어도 내가 나를 바꾸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누군가와 멀어지는 순간은 내가 그 사람에게 경계심을 보일 때부터다. 괜찮은 사람을 가려내는 데 쏟는 에너지,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는 데 쏟는 에너지, 내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 결정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