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시간차 개혁’ 조언
정부가 건강보험료(건보료) 부과 체계 개선안을 발표하기 하루 전에 이를 무기한 연기한 것은 건보료를 더 내게 될 집단의 반발을 우려해서다. 현 건강보험료 책정 기준을 소득 중심으로 개편하면 소득이 없는데도 재산 때문에 과도하게 건보료를 내던 은퇴자 등 지역 가입자 약 600만 명의 부담은 급격하게 줄어든다. 하지만 연금, 임대, 금융소득 등이 있는 고소득 직장인 가입자와 직장인의 부모 형제라는 이유로 건보료를 내지 않았던 피부양자 등 약 45만 명은 부담이 갑자기 늘어난다.
○ 단칼에 개혁하려는 조급증이 문제
전문가들은 보건의료계의 숙원사업인 건강보험 부과 체계 개선이 좌초된 이유가 ‘개혁에 대한 조급증’에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소득, 재산, 가족 수 등 다양한 기준으로 건보료를 책정하던 것을 단칼에 소득 중심으로 전환하려 했다는 것이다. 5년 이상 시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소득 중심으로 전환했다면, 국민들의 건보료 인상 체감도도 낮아지고 고소득 직장인과 피부양자들의 반발도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 인상 대상 단계적으로 늘렸어야
전문가들은 건보료를 더 내야 하는 사람의 수를 단계적으로 늘렸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당초 기획단은 현재 금융, 연금, 임대 등 추가 소득이 연 7200만 원 이상인 직장인 가입자에게 건보료를 더 걷던 것을 연 2000만 원으로 대폭 낮추는 것을 추진해왔다. 이럴 경우 고소득 직장인 약 26만 명의 건보료가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건보료를 추가로 내야 하는 소득 기준을 내년 6000만 원, 내후년 5000만 원 등 매년 1000만 원씩 낮췄다면 건보료가 인상되는 사람의 수가 점진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직장인의 부모 형제라는 이유로 건보료를 내지 않았던 피부양자의 경우 연소득 2000만 원 이상일 경우 건보료를 납부시키려 했지만, 이 기준도 3∼5년의 시차를 두고 단계적으로 올릴 필요가 있었다.
○ 보험료 변동폭 10%로 제한해야
또 소득을 중심으로 건보료를 부과하면 혜택을 보는 이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장치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지역 가입자의 약 80%가 연소득 500만 원 이하다. 이 때문에 소득만을 기준으로 건보료를 책정하게 되면 지역 가입자들의 보험료가 대폭 내려가게 된다.
고령화가 가속화하면 건보 재정 적자시대가 온다는 점을 감안해 소득을 중심으로 건보료가 개편됐을 경우 소득이 낮아 보험료를 내지 않는 지역 가입자에게 1만 원가량의 기본 보험료를 책정하자는 견해가 우세하다. 기초연금(20만 원)이 시행됐기 때문에 기본 보험료를 납부할 능력은 있다는 판단에서다.
유근형 noel@donga.com·이세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