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스터 터너’로 본 英 국민화가 윌리엄 터너
터너가 1799년 그린 자화상(왼쪽 사진)과 영화에서 터너 역을 맡은 티머시 스폴. 진진 제공
“터너…. 갈수록 시력을 잃어가는 모양이군.”
“너저분한 노란색 범벅이네.”
자신에 대한 인터넷 기사 댓글을 몰래 확인하는 연예인처럼, 영국 화가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1775∼1851)는 영화 중반 자신의 그림을 보고 혹평하는 구경꾼들의 조롱을 숨어서 엿듣는다.
부친의 전폭적 지원 덕에 타고난 재능을 일찌감치 세상에 알려 20대 때 이미 왕립아카데미 회원이 된 그는 평생 ‘가난한 예술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 영화가 2시간 30분 내내 묵묵히 주목하는 것은 ‘젊어서 성공한 예술가가 동시대의 흐름을 전략적으로 거스르며 스스로를 끝없이 발전시킨 이야기’다.
영화 ‘미스터 터너’에서 퇴역 전함 테메레르호가 예인되는 장면(위 사진). 마이크 리 감독은 영화 곳곳에서 터너의 작품을 움직이는 영상으로 재현했다. 아래 사진은 터너가 스스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꼽은 유채화 ‘해체를 위해 최후의 정박지로 예인되는 전함 테메레르호’(1838년). 진진 제공
60대 중반의 터너는 이 작품을 그리기에 앞서 선원들에게 부탁해 돛대에 몸을 묶고 4시간 동안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를 체험했다. 그는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다. 풍경이 어떻게 보이는지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눈에 보이는 형태를 캔버스 위에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의 움직임을 붓으로 전하려 한 것이다. 그를 옹호했던 비평가 존 러스킨은 “색채를 이성으로 파악한 것이 아니라, 시력 되찾은 맹인처럼 순수한 감각으로 인식했다”고 평했다.
오래된 서재에서 터너가 여인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모습을 담은 영화 속 장면(위 사진). 터너가 1830년경 청색 종이에 그린 수채화 ‘페트워스: 터너와 찬미자들’(아래 사진). 진진 제공
영화 속 터너는 “거울을 마주할 때마다 가고일(교회 지붕 귀퉁이에 장식되는 괴물 조각상)을 본다”며 자조한다. 딱 한 번, 그가 감정을 배설하듯 오열하는 장면이 있다. 먹고 살며 예술 하는 긴 싸움의 고단함이, 고장 난 기계 소음 같은 그 울음에 배어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