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지하 공간/김재성 지음/396쪽·2만5000원/글항아리
토목전문가인 저자는 지하라는 공간의 신화적 의미부터 철학적 가치,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동서양 지하공간의 역사 등을 두툼한 책 한 권에 담았다. 다양한 관련 삽화도 함께 실어 이해를 돕고 편하게 읽히도록 했다.
인류가 태초에 공동생활을 시작했던 곳은 지하 동굴이다. 음식을 저장하고 몸을 지키는 동시에 땅과 천상을 연결하는 통로였다. 동굴이 여신의 자궁으로 여겨진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집트 아메넴헤트 3세가 만든 장제신전,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가두기 위해 만든 크레타 섬의 미궁 등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지하공간이 등장하면서 지하에 대한 인식이 바뀐다. 추위나 맹수로부터 인간을 지켜주는 소중한 공간이 아닌,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위험스러운 사자(死者)의 공간으로 변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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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지하는 토지부족, 대기오염, 방사능, 지구온난화 등의 문제를 해결할 인류의 희망과 같은 장소로 인식된다. 현재 진행 중인 프랑스 신도시 구축사업 ‘레 알 프로젝트’는 도시 기반시설과 생활공간을 지하와 지상으로 분산 배치했다. 나아가 ‘미래의 지하’는 지상과 다르지 않은 공간을 넘어 지상이 갖지 못한 장점을 가진 장소로 발전할 것이라고 저자는 예측한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