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사회로 가는 대한민국의 과제’] 제2심포지엄: 갈등을 넘어 상생으로 인촌기념회-동아일보-채널A-고려대 공동주최 “한국사회 갈등 폐해 최대 246兆”
《 한국 사회에서 갈등으로 인한 폐해는 최소 82조 원에서 최대 246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제고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진단이 쏟아졌다.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 채널A, 고려대가 20일 고려대 경영관에서 공동 주최한 ‘선진사회로 가는 대한민국의 과제’ 두 번째 심포지엄에서는 커지는 계층 갈등과 세대 갈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
양창수 한양대 교수
국회가 다양한 이해관계 조정… 민주화에 걸맞은 역할 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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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역사가 긴 나라들을 보면 국민들 사이의 갈등은 정치권에서 조정해서 법률의 개정이나 제정으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대법관으로 재직할 당시 전원합의체에서 근로자 평균임금을 다룬 적이 있다. 그것은 장기간에 걸친 임금 결정의 실태 등에 비춰 국회에서 논의해 결정할 문제였다. 법 해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이 법원으로 넘어오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달성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민주화가 소극적으로 독재체제의 종식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민주화의 내용을 채우려면 법이라는 그물을 더 촘촘히 짜야 한다. 그물이 성긴 채로 있으니까 법이 뭐라고 정하고 있는지가 명확하지 않은 채로 남게 되고, 이것이 또한 국민들 사이의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국민들의 의사를 법률로 수렴하고 구체화해 나갈 수 있는 정당 정치의 개조가 불가피하다.
박길성 고려대 교수
불법시위-떼법 통하지 않게 갈등과 불신의 악순환 끊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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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제도를 통해 효과적으로 조정되지 못하는 갈등은 비제도적인 형태로 표출되기 쉽다. 대중 항의의 숫자는 민주화 이후에도 크게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불법 시위를 통해 정치적 의사를 관철하려는 사례도 2002년을 기점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갈등은 불신의 수원지다. 갈등과 불신의 퇴행적 악순환은 음모론의 확산으로 이어진다. 특히 사회적 쟁점에서 비롯된 갈등이 부각될 때 이런 형태는 매우 빠르게 확산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루머와 괴담의 유통경로이지 근원지는 아니다. 근본원인은 저신뢰 갈등이다.
이재열 서울대 교수
경제적 불평등 갈수록 심해져 생산적 복지 새로운 시스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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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불평등은 아주 심각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최근 들어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인종에 기인한 사회적 이질성은 없지만 혈연 지연 학연을 벗어난 사회적 신뢰 수준이 낮다. 이념적 거리감은 높은 편이다. 반면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복지 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를 제외하면 최하위 수준이다. 거버넌스(갈등을 풀어가는 정치적 역량)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투표율은 OECD 회원국 중 최저 수준이고 터키나 칠레보다도 낮다. 부패인식지수(CPI)는 전체 174개국 중 43위에 머물고 있다. 사회 통합을 위해서는 복지 지출을 늘리되 생산적 복지로 이어지는 정교한 시스템을 짜야 한다. 양당 독점체제가 가진 정치적 양극화 현상을 깨는 개혁을 통해 거버넌스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패 척결로 정부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이종수 연세대 교수
‘강자 대변’ 검찰 구조 바꾸고 언론의 균형자 역할 강화를
지니계수로 포착되지 않는 경제적 불평등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납세 자료로 분석할 때 지니계수가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불평등이 존재한다. 여기에 재벌 경제의 불평등까지 더해져 있다. 근원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갈등은 심각한 양상으로 비화할 것이다.
공공부문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내부 고발자에 대한 보호 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원자력발전소의 부패 커넥션은 내부 고발자에 의해 밝혀지기 시작했다. 내부 고발자에 대한 보상금을 서구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권력기관, 특히 검찰이 공정해야 한다. 일본은 검찰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높은 데 반해 우리는 그렇지 않다. 진실이 규명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약하면 법치는 강자를 변호하는 논리밖에 되지 못한다.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가 3명의 후보를 추천하는 현재의 구조를 바꿔 1명의 후보를 추천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 사회에는 균형자가 필요하다. 현실 사회에서 그 역할은 종종 언론에 의해 수행된다. 언론이 지나치게 담론 투쟁의 당사자를 자임하는 것은 한국적 정서와 괴리되며 사회 갈등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언론이 시민사회의 숙의를 돕는 기능을 해야 한다.
▼ 종합토론… 갈등해소 한국식 DNA를 찾자 ▼
“때론 설득보다 恨 풀어주는게 효과적” “우린 안된다는 패배의식 버려야”
참석자들은 한국인의 갈등표출 방식에 주목했다. 이성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 이숙종 성균관대 교수는 “한국인의 갈등표출 방식이 그악스럽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 소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런 경향이 한(恨)이라고 부르는 한국인의 정서와 관련될 수 있다고 보고 “어떤 때는 이성적 설득보다 정서적으로 ‘한’을 풀어주는 게 효과적”이라고 분석했다. 서구식의 리걸(legal)한 접근 방식으로만 갈등해결을 모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는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의 분류방식을 따라 한국을 고(高)맥락사회로 봤다. 고맥락사회는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많은 사회다. 미국과 유럽 같은 저(低)맥락사회는 일일이 말해줘야 한다. 저맥락사회는 문제를 드러내놓고 정의에 맞게 해결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반면 고맥락사회는 자기 문제를 직접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는다. 고맥락사회에서는 상대편의 체면을 지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박길성 고려대 교수는 “우리가 흔히 외국의 성공적인 갈등해결 사례를 들면서 우리는 왜 안 되느냐고 비하하기 싶다”며 제도적 측면 아래의 더 깊은 곳에 있는 문화적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유럽 국가가 복지나 정당정치에서 앞서는 것은 그들의 타협적인 문화가 제도와 같이 가기 때문”이라며 “우리도 나름대로 갈등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사례들을 연구해 한국식 DNA를 추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선진사회로 가는 대한민국의 과제’ 세 번째 심포지엄은 다음 달 3일 오전 9시 30분 고려대 경영대학 LG-POSCO관에서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