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 소설가
작년 여름 광화문광장에서는 희대의 블랙코미디가 펼쳐졌다. 인터넷 속에서 세상의 대낮으로 출현한 ‘일베’라는 우파 청년들이 단식투쟁 중인 세월호 유가족과 그 동조자들 앞에서 피자와 햄버거와 자장면을 먹어 댔고 이에 대한 반격으로 좌파들은 너희들은 인간이 아니라 개라면서 일베들에게 개 사료를 뿌려 댔다. 얼마 뒤 서북청년단이 재건됐고 신은미라는 한 기이한 친북 재미교포 여인에게 오모 군이라는 고교생 일베는 손수 제조한 폭탄으로 테러를 가했다. 이 이상의 사례들을 더 열거할 필요도 없이 대한민국은 이미 내면적으로는 내전 상태다. 미군정 방첩대(CIC) 공식 통계로 1947년 8월 한 달간 남한 내 좌우 대립 테러는 505건, 이로 인한 사망은 90명, 부상은 1100명이었다. 통일 대한민국은 제2의 해방정국 정도가 아니라 오만 가지 이념적 이해 집단들이 뒤엉킨 증오와 폭력의 무간지옥이 될 것이다. 나 같은 컬트 작가의 검은 예언이 적중하는 국가는 희망이 없기에, 나는 꿈에라도 장차 유명해지기를 바라지 않겠다. 다만 내 친구인 한 좌파 이론가가 저 일베를 두고 남한 극우의 변태적 변종이라는 식으로 간단히 진단해 버리는 것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으니 이는 어떤 충격적인 영상이 우리 사회의 한복판으로 내던져졌을 때 그 당사자일수록 그것을 더욱 과학적으로 분석해야 모든 이에게 밝은 미래가 있을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물론 그 당사자가 자신이 당사자인지도 모른다는 게 절망적이긴 하지만.
친구에게 묻는다. 일베의 친부모가 남한의 극우라는 그 비겁에 가까운 오만은 대체 어디서 배운 무식인가? 병든 이념의 섹스 끝에 저 일베를 잉태해 배 아파 낳은 아비 어미가 다름 아닌 이 나라의 수구 꼴통이라는 게 진정 온당한 소견이란 말인가? 천만에. 일베와 같은 어두운 군중 현상들은 특정 세력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반동으로 태어나 창궐하는 법이어서, 이 노릇을 깨달은 소위 진보 좌파는 졸지에 SF 공포영화 속으로 들어가 버리게 된다. 평소 자기들이 버러지(일베충)라고 경멸해 마지않던 그 에일리언들이 사실은 제 배 속을 뚫고 나와 자라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니까 말이다. 유전자 감식 같은 헛소린 제발 집어치우길 바란다. 아무리 바보라도 제 자식은 알아봐야지. 일베는 대한민국 좌파의 타락과 무능과 위선과 ‘자뻑’이 우파의 집 앞에 내다버린 사생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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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가 부패로 망한다고? 보수는 적어도 승리를 위해서라면 적의 충고조차 쥐가 밤말을 듣듯 한다. 이제 운동권의 도덕이라는 것은 이렇다. 제 사욕을 위해 친구를 사주해 친구를 살해한다. 전두환보다 나을 게 뭐란 말인가? 이러한 질문 안에 갇혀 있는 일베의 친부모들은 친구의 충언조차 절대 듣지 않는 강철 귀를 가지고 있다. “행하여 얻음이 없으면, 모든 것에 대한 나 자신을 반성하라. 내가 올바를진대 천하는 모두 나에게 돌아온다.” 맹자의 한 대목이다. 어차피 대한민국의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는 다 가짜지만, 날라리에 불과한 나는 이 나라의 진보 좌파에게 묻고 싶다. 정녕 노예가 되고 싶은 것인가?
이응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