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제2외국어 영역에서는 처음 도입된 베트남어에 가장 많은 수험생이 몰리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고교 교사들은 “스페인어와 프랑스어 등 기존의 제2외국어들은 정부의 무관심과 학생들의기피현상 때문에 고사 직전”이라고 비판했다. 동아일보DB
○ 제2외국어 수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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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제2외국어 수업을 외면한 지 오래다.
고등학교 2학년 김모 군은 “중국어 수업 시간에 중국어를 공부하는 아이들은 드물다”며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중국어를 선택하는 친구가 없어 선생님도 자습을 시키고 친구들은 다른 과목을 공부한다”고 말했다. 충북 청주의 한 고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교사 신모 씨는 “교사들이 모금운동을 해서 신문에 광고하고 교육부 공무원 쫓아다니면서 대책 좀 세워 달라고 호소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 씨는 “수업 시간에 대놓고 다른 과목 책을 펴놓고 공부하는 학생들을 봐도 야단치거나 책을 덮으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교장과 학부모들이 ‘수능 공부가 우선이다’며 이런 상황을 묵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교사들의 울분과 석연찮은 베트남어 돌풍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등 전통적인 제2외국어 교육이 무너지는 가운데 학교에서 거의 가르치지도 않는 베트남어, 아랍어에 학생들이 몰리는 기현상도 나타났다. 지난해 수능 제2외국어 과목 응시자 중 가장 많은 학생이 선택한 것은 베트남어(2만2865명)였고 그 다음은 아랍어(9969명)였다. 중국어(5782명)는 베트남어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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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상이 장기화되면 학생들 사이에서 ‘제2외국어 실력 양극화’가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부모가 고소득층이거나 학력이 높은 가정은 제2외국어의 필요성을 잘 알기 때문에 사교육을 통해서라도 자녀에게 외국어를 가르칠 것. 반대로 공교육에 의존도가 높은 일반 서민이나 저소득층 가정 학생들은 ‘수능 응시용’ 외에는 제2외국어 실력이 갈수록 낮아질 것이란 지적이다. 한 프랑스어 교사는 “올해 교육부가 내놓은 교육과정 개편 안에도 제2외국어 수업을 살릴 대책은 빠져 있었다”며 “지난해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 순방 때 프랑스어로 연설했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정작 고교 교실에서 프랑스어 수업은 사라지기 직전”이라고 꼬집었다.
이은택 nabi@donga.com·임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