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 대1 경쟁 뚫은 당선자 8명의 등단 분투기
“새해 첫날 새봄(新春)을 알립니다.” 201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한국 문단에 당찬 출발을 알렸다. 왼쪽부터 중편소설 전민석, 희곡 박선, 시조 김범렬, 단편소설 한정현, 시 조창규, 시나리오 박지하, 영화평론 윤경원, 문학평론 이성주 씨.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015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 당선자인 전민석 씨(35)는 지난해 겨울 춥디추운 방에서 소설을 썼다. 형편 탓에 보일러를 틀지 못한 방은 숨 쉴 때마다 허연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웠다. 손이 얼어 자판을 두드리기도 힘들고, 방문 밖으로 식구들의 한숨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그의 심장은 내려앉았다. 그래도 그는 썼다. 신춘문예 응모 마감일 아침 일어나 소설 결말 부분을 완성하고 우체국에 들러 서울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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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동아일보 신춘문예 응모 인원은 총 2006명. 0.4% 확률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선의 영광을 차지한 사람은 8명이다. 중편소설 등 9개 부문을 모집했지만 동화 부문 당선자는 내지 못했다. 젊은 신인 작가의 약진이 두드러져 시조 부문을 빼고 모두 20, 30대가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시 부문 당선자인 조창규 씨(35)는 이사 준비로 한창 바쁠 때 이삿짐센터에서 걸려온 전화인 줄 알고 덤덤히 받았다. 그는 “당선됐다는 말에 정말 기뻐서, 기뻐할 수 있는 시간을 놓쳤다. 감정을 표현한 건 하루나 이틀이 지나서였다”고 했다.
신춘문예 도전 9년 만에 거둔 결실이었다. 작사·작곡가, 출판사 교정교열, 편의점 아르바이트, 막노동까지 하면서도 시만큼은 놓지 않았다. 문학이 아니면 삶을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끊임없이 붙잡고 싶었다. “시가 여러 가지 감동을 줄 수 있겠지만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재밌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장정일 선생 같은 시를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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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도 일부러 야한 그림을 쓰고 출판사도 레즈비언 사랑 같은 자극적인 소재를 앞세워 홍보했지만 단 한 권도 팔리지 않았는지 수입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지 못하니 글도 사람도 자폐적으로 변하는 것 같았어요. 변화를 꾀하려고 독백 소설을 처음으로 희곡으로 써 보았습니다. 당선 후에도 삶은 똑같겠지만 소통이 됐다는 점이 먼저 기쁩니다. 컴퓨터에 저장해 둔 글들이 세상 밖으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인 한정현 씨(30)는 일찌감치 당선 기대를 접고 내년 초 계간지에 응모할 새로운 단편을 쓰고 있었다. 2013년부터 여러 계간지, 신춘문예 최종심에 올랐다가 떨어지자 자신감을 잃은 터였다. 한 씨는 당선 통보 전화를 받고도 작업 중인 소설은 끝내야 한다는 생각에 반가운 마음을 눌렀다. 충분히 눌렀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쓰고 있었다. “기쁘기보다 무서워요. 한 달에 한 편씩 쓰라는 선배들 말을 명심해서 열심히 읽고 쓰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시나리오 부문 당선자인 박지하 씨(33)는 어린 시절부터 신춘문예 공고를 보면 설렜다고 했다. 신문사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신춘문예 시상식장을 구경하며 ‘이다음에 커서 저 자리에 꼭 서리라’고 다짐했다. “시나리오로 여러 상을 받았지만 신춘문예에 당선되니 문학인이 된 것 같아 더 기뻤어요. 가슴 울리는 따뜻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영화평론 부문 당선자인 윤경원 씨(37)는 대만 타이베이에서 전화를 받았다. 대만국립정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인 그는 신춘문예에 처음 응모했다. 최종심에 올라 심사평에 언급만 돼도 글을 쓸 용기가 나겠다고 생각했는데 덜컥 당선까지 됐다. “전화를 끊고 나서 정말 기뻐서 홀로 소리를 질렀어요. 앞으로 글을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거네요. 약한 자에게 약하고 강한 자에 강하라는 말을 명심하고 그런 평론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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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인 문학평론 부문 당선자 이성주 씨(26)는 2월 졸업할 예정인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학생이다. 지난해 2월 막연하게 시를 써볼까 고민하던 그를 대학 은사인 김춘식 문학평론가가 불렀다. 이 씨가 수업시간에 쓴 시평 에세이를 인상 깊게 읽은 은사는 앞으로 문학평론을 써보라며 먼저 신춘문예 투고를 권유했다.
당시 토익 점수가 없어 졸업이 유예된 이 씨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에 살고 싶어 무작정 전북 군산으로 내려갔다. 군산의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으며 처음 쓴 문학평론으로 당선이란 결실을 봤다. 당선 통보 전화를 받던 순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고 있었다. “글은 좋아서 쓰는 것이니까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계속 쓸 생각이었어요. 이제 제 목소리, 스타일이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