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12대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 입적(1925 ~2014)
2010년 동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법전 스님. “설사 바다가 마른다고 해도 그 바닥을 볼 수 있건만 사람들은 죽도록 그 마음바닥을 알려고 하지 않는구나.” 해인사 퇴설당 서랍 속에 들어 있던 스님의 또 다른 게송이다. 동아일보DB
한 번 참선에 들어가면 구들장에 붙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절구통 수좌’라 불린 스님은 조계종 종정과 해인사 방장을 지낸 성철(1912∼1993), 혜암 스님(1920∼2001)의 뒤를 잇는 대표적 선승(禪僧)이었다. 왜색 불교로 피폐해진 한국 불교의 정신을 되살린 봉암사 결사(1947∼1950년)에 참여한 마지막 수행자의 한 명이기도 했다.
절구통 수좌의 목숨을 건 수행 이야기는 불교계의 전설이다. 1956년 31세 때 겨울 경북 문경 묘적암에서 수행할 때 쌀과 김치 단지 하나만을 두고 ‘내가 저 쌀이 다 떨어지기 전에 공부를 마치든가, 죽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하겠다’며 수행에 전념해 출가자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생전의 법전 스님(왼쪽)과 성철 스님. 동아일보DB
이후 평생의 스승 성철 스님과의 인연도 계속된다. 법전 스님은 1951년 경남 통영 안정사 천제굴에서 성철 스님을 시봉하면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때 성철 스님에게서 공부를 인정받아 도림(道林)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성철 스님이 파계사 성전암에서 10년 동안의 동구불출(洞口不出·절문 밖을 나가지 않음)에 들어갈 때 철조망으로 울타리를 친 이가 바로 법전 스님이었다.
법전 스님은 종단이 어렵던 1981년 중앙종회의장, 1982년 총무원장을 잠시 맡았지만 평생 참선하는 수행자로 살아왔다. 1996년 해인사 방장으로 추대된 스님은 2002년 혜암 스님이 입적하자 조계종 11대 종정에 추대됐다.
스님은 평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스승보다 뛰어난 제자가 나와야 한다며 눈 밝은 사람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 온 영원한 스승이었다. 2010년 종정 재임 시절 동아일보와 가진 유일한 인터뷰에서 매일 참회의 뜻이 담긴 108배를 하는 이유를 묻자 스님은 “참회는 종정인 내가 가장 많이 해야지요. 수행자는 부처님처럼 원만하게 수행해서 중생을 제도할 책임이 있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허물이 크다”고 했다.
‘산색수성연실상(山色水聲演實相·산 빛과 물소리가 그대로 실상을 펼친 것인데)/만구동서서래의(曼求東西西來意·부질없이 사방으로 서래의를 구하려 하는구나)/약인문아서래의(若人問我西來意·만약 어떤 사람이 나에게 서래의를 묻는다면)/암전석녀포아면(巖前石女抱兒眠·바위 앞에 석녀가 아이를 안고 재우고 있구나)’.
분향소는 해인사 보경당과 조계사 대웅전에 마련된다. 영결식은 27일 오전 11시 해인사에서, 다비식은 해인사 연화대에서 종단장으로 엄수된다. 055-934-3000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