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은 사회평론가
‘소비자가 왕’을 넘어 ‘신’으로 등극하고, 대학생에게도 신용카드를 발급해주며 마음껏 소비를 하라고 부추겼던 “부자 되세요”의 시대였다. 어떻게 얘기하든 부끄럽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때의 나는 내가 돈을 지불한 만큼 타인에게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고객으로서의 위치를 마음껏 즐겼던 것 같다. 학교 앞 밥집에서 “학생, 왔네? 거기 앉아” 소리를 듣다가 “고객님,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허리를 굽히는 직원들 앞에 서면 기분이 좋아졌던 것도 사실이다. 물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바로 와서 채워주는 것은 물론이고, 중간중간 “부족한 것은 없으신지” 챙겨주는 서비스를 받고 있노라면 괜히 으쓱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드높은 요즘이다. 그런데 ‘갑질 횡포’에 대한 질타만 있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과잉 친절’에 대한 지적은 보이지 않는다. “식당 가서 아줌마에게 반말하고 마트 캐셔를 함부로 대하고 택배기사 개무시하고 다들 그렇게 살지 마라. 조현아가 바로 너희다”라는 댓글이야말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지점은 아닐까. 직업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숨겨야 하는 ‘감정 노동’이 문제가 된 지도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형마트의 캐셔분들은 의자가 있는데도 ‘고객의 심기를 거스를까봐’ 서서 일하고 있고, 휴대전화라도 수리하러 다녀오고 나면 “기사가 친절하게 응대했는지”를 묻는 고객 만족도 전화가 어김없이 걸려온다. 정말 고객 만족도를 조사하고 싶다면 수리한 후에 휴대전화를 불편 없이 쓰고 있는지를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닐까. 물론 친절하면 좋긴 하겠지만, ‘친절’은 어디까지나 옵션이지 반드시 따라와야 하는 패키지가 아니지 않은가.
이번 ‘땅콩 회항’ 사건을 계기로 항공사는 물론이고 고객들의 인식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면 좋겠다. 승무원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친절’이 아니라 ‘승객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니까. 그리고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일하는 사람이 신나야 일도 잘되고 서비스도 좋아지기 마련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 않겠는가. 잊지 말자, 직원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정지은 사회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