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집 앨범 ‘샤키포’ 낸 한영애
가수 한영애는 “요즘도 비 오는 날 ‘멍 때리고’ 있는 게 좋다. 그러다 노래할 때 집중해서 온갖 그림을 쏟아낸다. 내년엔 데뷔 40주년 기념 전국투어를 하고 싶다”고 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의 한 음반사 사무실. 길고 구불거리는 머리를 늘어뜨린 아담한 여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음표를 밥풀처럼 오물오물 씹어내듯 부르는 가수, 소녀 할머니 광인 현자가 다 들어있는 목소리의 주인공 한영애의 대화 상대는 탁자 위에 놓인 한 뼘 키의 캐릭터 인형. “얘가 바로 샤키포예요. 샤끼뽕이라고도 하고. 인사해, 샤끼뽕.”
‘조율’ ‘말도 안 돼’ ‘누구 없소?’ ‘코뿔소’…. 취권 도사 같은 보컬 한영애가 26일, 15년 만에 정규 앨범을 냈다. 새 노래 10곡을 담은 6집 ‘샤키포’다. “올봄부터 제 안에서 소리가 터질 것 같아서 더는 못 참겠더라고요.”
한영애가 신병 앓듯 출산한 ‘샤키포’는 그 연장선에 놓인 쾌작이다. 신비로운 아가리를 동굴처럼 벌린 ‘회귀’(한영애 작사, 여노 작곡)가 서곡이다. 미국 인더스트리얼 록 밴드 나인인치네일스 같이 악몽처럼 분절된 전자음을 뚫고 주술사 같은 목소리가 올라온다. 한영애는 “이제까지 부르지 않았던 노래 스타일인데 (음악에) 혼자 누비고 다닐 상상 속 공간이 있었다. ‘길 떠났던 그 자리로 돌아오는 힘’이란 구절은 쓰고 부를 때 참 행복한 힘을 받았다”고 했다.
마지막 곡 ‘그림 하나’는 놀랍게도 한영애가 처음 만들어 발표한 연주곡이다. 무거운 비트와 몽롱한 신시사이저 소리에 통화 중 알림 음, 모스 부호가 2분 49초 동안 섞여든다. 미디(컴퓨터 작·편곡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직접 만들었다. 한영애는 “미디를 다룰 줄 모르면 더이상 동시대 프로듀서와 정확하게 소통할 수 없다. 혼자 습작을 해왔다”고 했다.
터널 같은 첫 곡과 마지막 곡 사이엔 희망적인 록과 발라드를 가득 담았다. 작사가로 한영애와 작가 황경신이, 작곡가로 가수 강산에, 영화음악가 방준석도 참여했다.
타이틀 곡과 앨범 제목은 팬이 선물한 인형에서 땄다. “이 친구가 너무 맘에 들어서 여름 내내 대화했어요. 한순간 떠오른 대로 뜻도 없는 ‘샤키포’란 이름을 지어주고.” ‘너의 꿈을 버리지 마/기적은 일어날 거야’ 하는 가사 사이로 ‘샤키포! 샤키포!’ 하는 여흥구가 주문처럼 끼어든다. 그는 인터뷰 중간에도 대답 없는 샤키포와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했다.
공연이 녹음보다 덜 긴장된다는 한영애의 귀기 어린 목소리는 다음 달 27일 오후 7시, 28일 오후 4시 서울 강동구 동남로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5만5000∼9만9000원·02-440-0500)에서 들을 수 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