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질환 1000만시대 “예방이 최선이다”] <下> 일상서 실천을
강북삼성병원 기획팀 서승현 씨가 병원 내 계단 입구에 설치된 전자식 단말기에 스마트폰을 찍고 있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 이 단말기를 사용하면 자신이 오른 계단의 수가 자동으로 저장되고,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실시간 확인도 가능하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작은 생활 습관의 변화였지만,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키 170cm인 손 씨는 만보기를 사기 전까지 체중이 76kg이었다. 체질량지수(BMI·m²/kg)가 26.3으로 경도 비만 상태. 하지만 현재는 71kg까지 빠졌다. 손 씨는 “다른 운동을 거의 못한 것을 감안하면 만보기 효과가 컸다는 걸 느낄 수 있다”며 “살이 빠지고 나니 소개팅 성사율도 높아지는 등 대인관계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만성질환 예방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작은 생활습관 변화만으로도 중장년이 됐을 때 만성질환에 걸릴 위험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는 얘기.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는 “뇌중풍(뇌졸중), 당뇨병, 고혈압 등으로 인한 조기사망 가능성은 80% 가까이 예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경기 광명시가 배포한 건강 식사 일지 샘플. 전문가들은 식사 일기 작성이 식욕 억제에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질병관리본부 제공
가장 손쉬운 만성질환 예방법은 자신의 건강 수치를 규칙적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등 기본적인 건강 수치를 알고 있는 사람일수록, 건강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 국가보건영양조사 결과에 따르면, ‘건강 수치 인지율’이 높으면 만성질환 예방율도 올라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60대 남성의 혈압 수치 인지율은 1994년 68%에서 2004년 77%까지 늘었는데, 같은 기간 고혈압 확진 환자 중 약을 잘 복용하면서 혈압 수치를 정상으로 끌어내린 비율이 40%에서 62%까지 증가했다.
정율원 질병관리본부 만성질환관리과 책임연구원(예방의학과 전문의)은 “고혈압 당뇨병은 전 단계에서 위험을 인지하고 예방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며 “미국의 연구 결과는 아는 만큼 예방이 가능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자신의 건강 수치 알기’에 대한 인식이 낮은 실정이다. 지난해 지역사회건강조사에 따르면 혈압 수치를 알고 있는 비율은 47.2%에 불과하다. 혈당(11.6%), 콜레스테롤(5.5%) 수치 인지율은 더 낮았다. 질병관리본부는 건강 수치 인지율을 높이기 위해 9월부터 ‘자기 혈관 숫자 알기, 레드써클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자신의 건강 수치를 일기장 형식으로 기록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특히 만성질환의 전 단계인 고도비만 환자들의 경우 식단 일기를 쓰면 식욕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오상우 동국대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식단 일기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적으로 먹고 있는 탄수화물과 지방의 섭취를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다”라고 말했다.
개인의 건강한 생활습관을 위해 일터가 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대적으로 가정보다 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강북삼성병원이 개발한 ‘오르GO 나누GO’ 애플리케이션은 회사가 직원의 건강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병원은 약 1500만 원을 투자해 모든 계단 입구에 전자식 단말기를 설치했다. 직원들은 버스를 타고 내릴 때처럼 계단 입구에 들어갈 때와 나갈 때마다 스마트폰을 이 단말기에 찍는다. 직원들은 앱을 통해 자신이 오른 계단 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계단 이용 목표량도 설정할 수 있고, 다른 직원과의 비교도 가능하다.
11월에만 573계단을 올라서 23일 현재 전체 직원 중 계단이용 순위 3위에 올라 있는 신호철 강북삼성병원장(가정의학과 교수)은 “앱 개발 후 직원들 사이에 걷기 열풍이 불고 있다. 생활 속의 작은 변화가 질병 예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