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 정책사회부장
황 장관의 발언을 놓고 “천만다행”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도 하나의 용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잘못된 내용의 문항을 두고 그동안 잘못이 아니라고 주장해 온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참 안쓰럽게 됐다.
논란이 된 8번 문항의 보기 ㉢은 ‘유럽연합(EU)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보다 총생산액의 규모가 크다’는 내용이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교육과정평가원은 “교과서와 EBS 교재에 “EU가 NAFTA보다 총생산액 규모가 크다고 되어 있으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지난해 11월 수험생들의 이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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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평가원은 무엇이 본질인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평가원의 대처는 애초부터 미숙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에 잘못을 인정했으면 다시 살아났을 평가원의 체면이 이로 인해 많이 망가졌다.
교육부의 상고 여부는 지켜볼 일이다. 상고심에서 판결이 다시 뒤집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판결이 뒤집힌다고 해도 뒤집히지 않는 것이 있다. 8면 문항의 보기 ㉢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 말이다.
이번엔 국정감사에서 파스타 논란이 불거졌다. 2011년부터 올해 7월까지 서울 중구 정동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건물 1층에 있는 파스타 식당에서 평가원 법인카드로 총 4751건에 걸쳐 8억2000만여 원을 결제했다는 것이다. 평가원은 이에 대해 “각종 회의에 참석한 수천 명의 전문가와 교육기관 관계자들이 식사한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공공기관의 설명이니 믿어야겠지만, 3년 반 동안 한 곳의 식당에 무려 8억 원이라니. 설령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도 한 곳에 8억 원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판단 미숙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 파스타 식당에 들러 평가원 사람들이 외부 인사들과 어떻게 식사를 하는지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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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인턴사원 장그래가 아니라 오상식 과장이었다. 충혈된 눈으로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처연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월급쟁이. 그가 세계지리 8번 문항 논란과 파스타 8억 원 논란을 접한다면 뭐라고 할까. 퇴근길에 장그래와 함께 소주 한잔 들이켜며 “미생은커녕 미숙(未熟)하기만 한 이놈의 세상”이라고 푸념할 것 같다.
이광표 정책사회부장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