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
한국보다 먼저 일본에서 살았다. 교토에서의 첫 가을이 깊어가던 어느 날, 오후 9시쯤 딸깍딸깍 나무막대를 부딪쳐 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매일 밤 반복됐다. 궁금해서 이웃에게 물어봤다. “화재가 발생하기 쉬운 가을엔 주민이 한 명씩 골목을 돌며 주위를 살펴보라는 의미에서 나무 소리를 낸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이런 일본에서 지내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당혹스러운 순간이 많았다. 일례로 호텔에 투숙하는데 그 누구도 비상구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다. 일본에선 방과 함께 비상구를 안내하는 게 당연했다. 아쉽게도 한국에선 평소에 안전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 않다. 형식적이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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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의 사회적 행동을 보면 안전 의식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 수 있다. 문이 닫히는데 발부터 끼워 넣어 무리하게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 승객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차를 출발시키는 버스 운전사, 차를 몰면서 버젓이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운전자들…. 안전에 대한 의식이 높다면 나타날 수 없는 행동들이다.
해결책은 분명히 있다. 사회적 공감대를 확대하고 안전에 대한 의식을 높이면 된다. 다행히 한국인들은 사회적 공감대가 만들어지면 그 문제를 잘 해결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불과 30년 전인 198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에 금연 식당이나 금연 술집은 없었다. 어디에서나 담배를 피우고 담배꽁초는 아무 데나 버렸다. 이런 행동들이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의 안정을 해친다는 공감대가 생기면서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 결국 안전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지속적으로 형성하는 게 최대 과제인 셈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안전의식을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때론 시민이 다소 불편해질 수 있지만 기꺼이 따라야 한다.
다시 일본 얘기다. 2000년대 중반 교토에 살 때 한국에서 온 손님과 함께 ‘뵤도인(平等院)’이란 문화재를 찾았다. 그런데 그날 입장이 금지돼 있었다. 이유를 물어봤더니 관람객이 너무 많아 안전과 문화재 보존 때문에 입장을 제한한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이런 일이 드물지 않다. 지방의 신문을 보면 지역 문화재나 중요 시설의 안전 점검과 대피훈련 등에 관한 기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시민들이 불편할 법하지만 항의하는 이는 거의 없다. 그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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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빨리빨리’ 때문에 사고가 일어난다는 핑계를 버리라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원한다면 사회적 공감대부터 만들라고. 시민 스스로가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 행동을 하면서도 모른 체하고 있지 않느냐고. 이런 문제만 해결해도 ‘안전 대한민국’에 성큼 다가설 수 있으리라.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