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병처럼 번지는 低성장 - 低물가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유럽 등 주요국 증시는 지난달 중순부터 한 달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16일 코스피는 전날 미국과 유럽 증시가 급락한 영향으로 장중 한때 1,900 선이 위협받는 등 약세를 면치 못했다. 이미 금리를 낮출 만큼 낮춘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은 뾰족한 대책이 없어 무력감에 빠진 분위기다.
신흥국들도 물가 상승세 둔화의 예외가 아니다. 중국의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6% 상승하는 데 그쳐 올 들어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 같은 중국의 물가지표가 공개되자 국제 금융계에서는 “디플레이션 압력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한 당국이 향후 추가 부양책을 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들이 나왔다. 인도 역시 9월 물가상승률이 2012년 1월 이후 최저 수준을 보였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물가 상승률도 어느 한쪽이 둔화되면 교역 경로를 통해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최근 글로벌 경제에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점차 전염되는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원자재 가격이 바닥 수준까지 떨어진 것도 이 같은 ‘저물가의 악순환’에 일조하고 있다. 수요 부진에 따른 원자재 가격 하락이 물가 수준을 내리고 이는 다시 경기 부진으로 이어지는 순환 고리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각국의 원유 수요 부진에 따라 15일 거래된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85달러 이하로 떨어지며 올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 정책수단 바닥난 중앙은행들
문제는 각국 정부가 세계경제의 동시다발적 침체에 별다른 ‘특효약’을 내놓지 못한다는 점이다. 미국 유럽 일본은 이미 정책금리를 더 내릴 수 없는 한계수준까지 떨어뜨렸다.
중앙은행들의 대응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사정이 가장 급한 유로존은 제로금리에 이은 ‘유럽판 양적완화(QE)’의 도입을 모색 중이다. 재정을 풀어서라도 물가를 떠받쳐야 한다는 계산이지만 이는 재정긴축을 주장하는 독일의 강력한 반대, 또 유럽연합(EU)의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 때문에 쉽지 않다. 다만 독일도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나란히 1% 안팎으로 후퇴한 상황이라 반대할 명분이 많이 줄어든 상황이다. 이달부터 양적완화를 종료하고 금리 인상을 위한 본격적인 채비에 들어가는 미국도 이런 세계경제 상황을 고려해 인상 시기를 당초 예상됐던 내년 중반에서 내후년 초로 늦출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유재동 jarrett@donga.com·박민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