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서울대 초빙교수 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그러면 시험과 평가가 아예 없는 사회는 가능할까? 학교에서는 모든 시험이 사라진다. 들어가고 싶은 회사라면 누구나 입사할 수 있다. 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은 모두 의사가 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나 그런 사회는 결국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말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시험과 평가는 그만큼 불가피한 일이다. 오히려 좋은 시험과 평가제도는 사회를 활기차게 만들어 발전을 촉진하는 선순환 궤도의 출발점이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가장 중요한 평가 중 하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일 것이다. 실제로 전국 모든 수험생이 시험 당일에 얻는 수능 점수는 아직도 대학 입학에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다. 18세의 꽃봉오리 같은 어린 학생 60여만 명이 하루 종일 문제의 정답을 골라낸 결과를 컴퓨터로 채점하여 1점 단위로 모든 학생을 줄 세우는 획일적인 평가가 선진국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안타까운 모습이다. 이렇게 개성과 장기를 철저히 묵살하는 평가제도를 고수하는 한 창의적 인재 양성은 불가능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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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대학을 마친 우리 젊은이들은 불행하게도 또 하나의 획일적 잣대 앞에 줄을 서야 한다. 대기업 입사를 위한 직무적성검사가 그것이다. 소위 ‘삼성고시’ 등에는 각각 매년 20여만 명의 지원자가 몰리고 있다. 서너 시간 안에 치르는 객관식 위주 시험을 통해 미래 부품설계 엔지니어부터 완제품을 외국에 수출할 영업 전문가까지 모두가 한꺼번에 선발된다. 회사는 전문분야별로 역량 있는 인재를 골라내지 못해 답답하다. 응시생은 자기역량을 보여 줄 수 없으니 결국 모두에게 아쉬운 평가제도다.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시험 및 평가는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여태껏 우리가 이러한 객관적 평가방식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마도 서로가 서로를 못 믿는 상황에서 평가 결과에 대한 사회적 수용에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험과 평가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주관성도 개입돼야 한다. 결코 공정을 해치는 일이 아니다. 개개인의 능력을 제대로 살피고 이를 키워주기 위해서는 대학 입학 및 기업 입사시험제도가 혁신되어야 한다.
김도연 서울대 초빙교수 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