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글꼴디자이너 1세대 최정호 생애 다룬 책 9월말 출간
① 확대경으로 글꼴 원도 작업을 검토하는 최정호. ② 펜 밑그림을 가는 붓으로 마무리하는 모습. 최정호는 서예가들과 교류하며 고유의 ‘궁서체’를 개발했다. ③ 최정호의 제목글꼴 디자인이 적용된 1970년 3월 23일자 동아일보 1면. 이전보다 획의 맺음과 세로줄 시각흐름이 정돈됐다. 노은유 씨 제공
흩어진 그의 기록과 자취를 끌어모은 책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안그라픽스)가 이달 말 출간된다. 저자는 후배 글꼴디자이너 안상수(62) 노은유 씨(31). 1990년대 ‘아래한글’에 탑재돼 널리 알려진 ‘안상수체’를 만든 안 씨는 1978년 한 디자인잡지 인터뷰를 통해 최정호를 처음 만났다.
“서울 신문로 출판사 구석자리 책상 위에 먹물, 연필, 모눈종이, 지우개, 돋보기가 놓여 있었어요. 화려하게 살다 간 인물은 아니었지만, 이 땅에 그만큼 깊은 족적을 남긴 디자이너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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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 씨의 업적과 생애를 책으로 엮어낸 글꼴디자이너 안상수(왼쪽), 노은유 씨는 “선배가 남긴 큰 숙제를 해낸 기분”이라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안정감과 세련미에서 전의 활자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지금 출판물에 써도 전혀 어색하지 않아요. 그가 처음 만든 특별한 디자인이, 지금 우리가 매일 쓰는 평범한 서체가 된 거죠.”
최정호의 명성은 한국에 사진식자기 수출을 원한 일본 업체에 전해졌다. 1969년 모리사와사가 그에게 한글원도 디자인을 의뢰했다. 이때 만든 것이 지금 쓰는 ‘명조체’ ‘고딕체’의 원형이다.
“모리사와 한자체에 ‘명조’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죠. 최 선생은 훗날 ‘누군가 그 이름을 바꿔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어요. 초청받은 장인이었지 하청업자가 아니었으니까요.”(안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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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명조체보다 폭이 약간 좁고 선이 살짝 굵어졌습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적용시킨 미세한 변화인데, 지금 글꼴디자이너들이 대부분 폭을 좁히고 획을 굵게 만들어서 쓰거든요. 훗날의 쓰임에 맞는 글꼴을 20여 년 전에 만들어놓고 가신 건가 싶어요.”(노 씨)
최정호는 후배 글꼴디자이너들에게 “더 균형 잡힌 ‘그’와 ‘교’자를 만들어 달라 당부하곤 했다. 수십 번 썼다 지웠다 하며 최선을 다해 내놓았지만 ‘그’는 어떻게 쓰든 유난히 커 보이고, ‘교’는 내려 긋는 작대기 3개가 각각 잘난 듯이 버텨 서서 어색해 보인다는 것. 그의 한글 원도 완본은 한국이 아닌 일본에만 보관돼 있다. 남겨진 숙제는, 더 매끈한 ‘그’ ‘교’자만은 아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