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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소리뒤 배 기울어… ‘죽는구나’ 순간, 선원들이 조끼 입혀줘”

입력 | 2014-10-01 03:00:00

홍도 유람선 좌초 25분만에 전원 구조




“‘쿵’ 소리가 나면서 배가 기울더니 파도가 들이치고 기관실에선 검은 연기가 났어요. ‘이러다 세월호 참사처럼 다 죽는구나’ 싶었는데 선원들이 침착하게 구명조끼를 입혀주고 제일 늦게까지 배에 남아 있더라고요.”

30일 전남 신안군 홍도 앞바다에서 좌초한 유람선 바캉스호(171t)에 타고 있던 동옥면 씨(56·여·부산 영도구)는 사고 당시를 이렇게 설명했다.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상황이었지만 선원과 주변 선박들이 신속하게 구조에 나서면서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바캉스호 좌초 사고에서는 선원 5명이 끝까지 배에 남아 승객 구조 활동을 펼쳤다. 관제센터가 우왕좌왕하고 구조대 역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고 때와 달리 빠르고 유기적인 연락으로 빠른 구조가 가능했다. 여기에 승객들 역시 서로 손을 잡고 질서 있게 탈출한 것도 이날 사고에서 사망자를 발생시키지 않은 원인으로 꼽힌다. 충돌의 충격으로 승객 23명만 머리와 허리 등에 타박상을 입고 병원 치료를 받았다.

구조 승객 김모 씨(51·전남 순천시)는 “선원들이 침착하게 대피 방향을 일러줘 당황하던 승객들도 안정을 찾고 차분히 구조를 기다렸다”며 “‘세월호 때에도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사고는 이날 오전 9시경 신안군 홍도 6경인 슬픔여바위 동북쪽 200m 해상에서 발생했다. 바캉스호는 슬픈여바위에 다가가던 중 암초와 충돌해 배 왼쪽에 폭 1m 길이 4m 구멍이 뚫려 앞부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홍도 주민들은 바캉스호가 충돌한 물속 암초를 ‘두루미 여’라고 부른다.

바캉스호 좌초 사고 상황은 150m 뒤에서 운항하던 유람선 썬플라워호(99t)가 처음 발견했다. 썬플라워호 김준호 선장(61)은 선박통신기(VHF) 11번 채널로 ‘바캉스호가 침몰하고 있다’고 급박하게 인근 선박들에 알렸다.

SOS 요청은 사고지점 북쪽 500m 해상을 운항하던 유람선 파라다이스호(90t)에 전파됐다. 선원 박정복 씨(40)는 오전 9시 11분 휴대전화로 목포해경 홍도파출소에 “바캉스호가 좌초됐다”고 신고했다. 홍도파출소 최재곤 경위(42)와 홍도청년회 최경만 총무(45)는 “어선 등을 사고 해역에 보내 구조해야 한다”는 마을방송을 하고 비상사이렌을 울렸다. 소형어선 15척과 운항하지 않던 유람선 3척이 급히 출항했다. 홍도 어민들이 평소 간담회에서 선박구조법을 자주 논의해 이 같은 신속한 대응이 가능했다. 해경은 바캉스호에 연락해 승객 전원 구명조끼 착용, 침수 대비 격문 폐쇄 등을 요청했다.

홍도항에서 출항한 어선 등이 사고 해역에 도착하기 전까지 썬플라워호는 바캉스호 승객 80여 명을 구조했다. 어선 등 18척은 나머지 승객 20여 명까지 오전 9시 반 무사히 구조했다. 썬플라워호가 바캉스호 좌초 상황을 전파한 지 20분 만에 승객 105명이 무사히 구조된 것이다. 바캉스호 선원 5명은 승객들이 무사히 구조될 때까지 선내를 떠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바캉스호는 적지 않은 문제를 드러냈다. 세월호 침몰사고 직후인 4월 말 홍도 주민 70여 명은 “바캉스호가 일본에서 건조된 지 27년 된 데다 선체 바닥이 완만한 곡선형으로 잔잔한 바다를 운항해 파도가 센 홍도를 유람하면 사고 위험이 높다”며 운항허가를 내주지 말라고 목포해경에 탄원서를 냈지만 허가가 났다.

또 이 선박은 증·개축 작업을 해 승선 정원을 350명에서 500명으로 늘려 올해 5월에 해경의 유람선 운항 허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좌초 사고 당시 구명 뗏목도 작동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목포해경은 선장 문모 씨(58) 등 바캉스호 선원들이 2.5m 높이 너울성 파도가 치는 상황에서 부주의로 항로에서 5m 정도 벗어나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신안=이형주 peneye09@donga.com·정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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