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처럼… e북 단말기 사니 문학전집이 그 안에
회사원 이모 씨(40)는 학생 때 집집마다 서재에 꽂혀 있던 ‘세계문학 전집’이 부러웠다. 이 씨는 “요즘 100권이 넘는 문학전집을 사는 사람이 적겠지만 옛 로망 때문에 구매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지불한 비용은 0원. 전자책(e북) 단말기를 사자 전자책 세계문학전집을 공짜로 받았다.
○ 전자책 150권이 공짜…e북 무료 경쟁 가속화
전자책 권당 가격은 종이책의 70% 수준. 보통 1만 원짜리 전자책 한 권이 판매되면 7000원은 출판사가, 3000원은 유통사가 가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100권 이상의 전자책을 공짜로 줄 수 있는 걸까.
출판사와 유통사가 수천 권을 매절(買切)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보통 매절 계약을 하면 출판사는 권당 약 500∼1000원에 유통사에 판다. 도서출판 ‘열린책들’은 자사 세계문학(155권) 수천 세트를 매절해 예스24에 판매했다. 예스24는 이 책들을 전자책 단말기 판매를 위해 공짜로 끼워준다. 예스24 관계자는 “스마트폰, 태블릿PC가 많이 보급된 상황에서 전자책 단말기를 팔려면 무료로 콘텐츠를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아마존 벤치마킹? 출판계 “전자책 공짜 인식 만들어 공멸”
B출판사 대표는 “제조업체가 월마트에, 음반회사가 아이튠스의 납품업체로 종속된 것처럼 출판사도 유통사에 종속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자책을 매절한 출판사들도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열린책들’ 측은 “지난해 예스24에 세계문학 세트를 대량으로 팔긴 했지만 공짜로 단말기에 넣을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반면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김진우 전자출판팀장은 “콘텐츠를 공짜로 주더라도 일단 전자책 시장을 일정 규모로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 유통사들이 ‘아마존 전략’을 벤치마킹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마존은 자사 단말기 ‘킨들’에 약 80만 종의 전자책을 무료로 제공해 미국 전자책 시장의 약 65%를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출판계의 공적이 됐다. 실제 6월에는 수익 배분을 두고 갈등을 일으킨 출판사의 책에 대한 신간 예약을 중단해 논란이 일었다.
한국전자출판협회 장기영 사무국장은 “출판사와 유통사 중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시장을 주도하기보다는 서로 협의를 통해 전자책 시장을 키우되 ‘전자책은 공짜’라는 인식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 합리적 가격 선을 합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종 zozo@donga.com·박훈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