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세력? 기득권 세력? 한국에서 보수 의미는 불명확 진보가 붙인 ‘주홍글씨’ 못떼면 보수가 주도하는 어떤 혁신도 국민, 의구심 갖게 될 것 지키고자하는 원칙은 무엇인지 실천 위한 방법은 어떤건지 새누리 黨이념으로 재정립하라
최중경 헤리티지재단 객원연구위원 동국대 석좌교수
한국정치에서 보수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산업화 세력이라고도 하고 유신잔재 세력이라고도 한다. 기득권 세력이라고 정의하며 계층 간 편 가르기를 시도하기도 한다. 어느 경우든 보수주의자는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라는 상쾌하지 않은 인상을 준다. 보수를 대표하는 새누리당은 보수혁신을 논하기 전에 보수의 왜곡된 정의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보수주의가 그렇고 그런 사람들의 믿음으로 인식된다면 국민들은 보수가 주도한 혁신에 의구심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보수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대안이 없어 지지한다면 그런 허약한 지지 속에 안주해선 미래가 없다.
보수주의의 실체가 진보 논객들이 정의한 대로 ‘기득권 세력의 이익 옹호’인지 다른 차원의 ‘의미 있는 가치 추구’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서양의 정치 경제에서 보수주의, 진보주의 개념은 우리와 크게 다르다.
보수주의자들은 무거운 세금에 의존하는 과잉 복지가 투자의욕과 근로의욕을 떨어뜨려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는 입장이다. 진보주의자들은 복지 지출을 늘려야 기회의 균등이 확실히 보장된다는 주장을 편다. 서로 다른 주장을 펴지만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나 헌법정신과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데에는 차이가 없다.
보수주의자는 그렇고 그런 사람이라는 식의 ‘몰아붙이기’도 없다. 보수와 진보는 공유하는 원칙이 있지만 원칙을 실천하는 방법론이 다른 경우의 개념 분류이다. 우리는 이와 달리 ‘독재세력 대 반독재세력’ ‘기득권세력 대 개혁세력’ ‘산업화세력 대 민주화세력’처럼 공존하기 어려운 적대세력 내지 서로 맞서는 진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논쟁이 ‘이성적인 논리싸움’이 아니라 ‘감정적인 패거리싸움’이 되도록 놔둔 원로 이념논객들은 이제 집에 갈 때가 되었다.
새누리당은 진보논객들이 가슴에 붙여준 주홍글씨부터 떼내야 한다. 주홍글씨가 자신들의 업보인 줄 알고 가리기에 바쁘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보수정당으로서 지키고자 하는 원칙과 실천을 위한 방법론을 당 이념으로 재정비하고 기득권 세력이라고 몰아붙이는 데에 맞서서 당당하게 이념대결을 해야 한다.
새누리당의 논객들은 공부를 철저히 해야 한다. 이념논쟁에 들어가면 준비 부족으로 수세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상대방이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입장이면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새누리당 고위 당직자가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교수가 맞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는 언론보도를 보면 새누리당의 보수혁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보수혁신이 보수를 포기하고 진보나 나아가 사회주의에 동화되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보수혁신특위가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국적불명의 비빔밥을 만든다면 회복하기 힘든 자충수가 될 것이다. 보수혁신특위는 보수가 제자리를 찾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보수가 바로 서 보수와 진보가 정정당당한 이념논쟁과 정책대결을 할 때 고질적 병폐인 진영싸움과 지역주의가 사라진다.
최중경 헤리티지재단 객원연구위원 동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