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엔 956원으로 3년새 36% 하락… 車등 수출비중 높은 국내기업 비상
글로벌 경제가 놓인 환경을 봐도 엔화 약세의 큰 흐름을 되돌릴 만한 요인은 찾기 힘들다. 오랜 저성장의 터널에 갇힌 국제사회가 일본의 디플레이션 탈출을 응원하고 있다. 이에 비해 엔저의 파장을 경계하는 한국의 목소리는 미약하다.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과 일본 기업의 명암은 벌써부터 엇갈리고 있다.
○ 번번이 한국경제 위기로 빠뜨린 엔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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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엔고의 덕을 본 대표적인 사례는 1980년대 후반의 3저 호황이었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엔화가치가 올라가자 주요 수출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던 한국은 경제성장률이 기록적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이런 국면은 1988∼1990년의 ‘1차 엔저’로 곧 막을 내렸다.
엔화 약세로 인한 본격적인 피해는 1997년과 2008년에 현실화됐다. 1995년 4월∼1997년 2월(2차 엔저) 중 엔화 대비 원화가치가 30% 올라가면서 경상수지 적자폭이 큰 폭으로 불어났고 이는 1997년 외환위기의 도화선이 됐다. 또 2004년 초부터 2007년 중반까지 이어진 ‘3차 엔저’ 역시 국내 은행들의 외화유동성을 악화시킨 빌미로 작용했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국내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크게 키웠다.
한국은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수출이 28% 급증하면서 다시 한 번 엔화 강세의 수혜를 입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2012년 일본이 아베노믹스를 앞세워 금융시장에 ‘엔화 살포’를 시작하면서 한국 수출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그해 한국의 수출증가율은 마이너스(―1.3%)로 돌아섰고 작년과 올해 모두 2%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은 “이제 일본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엔화 약세를 반영해 해외에 파는 달러표시 가격을 낮추고 있다”며 “일본의 반격으로 우리 수출이 타격을 입으면 1997년, 2008년의 위기가 재연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 국제사회도 엔저에 우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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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난 주말 호주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일본은 사실상 아베노믹스에 대한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번 회의에서 G20은 “세계경제의 수요가 취약하다”며 “선진국 중앙은행은 디플레이션 압력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 원엔 환율 1% 내리면… 국내수출 0.92% 감소 ▼
상황이 급박해지자 한국의 당국자들도 우려 섞인 발언을 공개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이달 기자간담회 및 국회 세미나 자리에서 잇달아 엔화 약세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한은 총재가 민감한 환율 문제에 대해 공개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일본이 추가 양적완화에 나서면 한국의 수출경쟁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 일본 기업 가격 공세 강화
산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원엔 환율이 1% 하락하면 국내 기업의 수출은 약 0.92%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중소기업도 전반적으로 피해를 본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올해 원-엔 환율은 손익분기점(1059원 선)을 이미 한참 밑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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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조선 철강업종은 엔저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이 그리 크지 않다는 평가다.
유재동 jarrett@donga.com·정세진·강유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