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은 1장에, 사진은 2방에 500원 주이소."
WBC(세계복싱평의회) 전 라이트플라이급 세계 챔피언 '짱구' 장정구(51) 씨를 우연히 만나면 꼭 듣는 부산 사투리다. 장 씨는 팬들이 사인을 부탁하거나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하면 이렇게 장난스럽게 말한다.
그래서 장 씨가 왼쪽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동전 지갑에는 500원 짜리 동전이 두둑하게 쌓여 있다. 남다른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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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씨는 1983년 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타이틀을 딴 뒤 1988년 타이틀을 자진 반납하기까지 15차 방어에 성공했다. 악착같은 투지와 능수능란한 변칙 기술을 바탕으로 화끈한 경기를 펼쳐 아직도 그의 경기를 기억하는 팬들이 많다.
13살 때 고향인 부산에서 어머니를 졸라 받은 1500원으로 체육관에 등록해 권투를 시작한 장 씨는 챔피언으로서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나만의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멕시코 선수는 느린 대신 주먹이 강하기 때문에 절대 맞받아쳐서는 안 되고, 파나마, 콜롬비아 등 중남미 선수들은 유연성이 있어서 근접해서 거칠게 몰아 리듬을 뺏어야 되죠. 링에서는 나를 버리고 상대를 완전히 읽는 IQ 350 짜리 선수가 돼야 해요."
장 씨는 최근 간장게장 식당을 하고 있지만 돈에는 크게 관심 없다고 한다. 대학 졸업반과 고 3인 두 딸을 지원하는 정도만 벌고 손님들이 맛있게 먹어주면 그만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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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국 복서로는 처음으로 2000년 'WBC 20세기를 빛낸 위대한 복서 25인'에 선정됐고, 2010년 국제복싱 '명예에 전당'에 헌액 됐다. 또 WBC가 제정한 '팬들이 선정한 위대한 선수'로 뽑혀 오는 12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52차 WBC 총회에서 영광의 수상을 하게 된다. '상대가 없으면 나도 없다'는 현역시절 링에서의 생각은 지금도 그대로다. 사각 링을 떠나서도 상황에 맞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갈 뿐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