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판매순위 조작 큰 파장
출판계가 또다시 ‘사재기’ 홍역을 치르고 있다. 정부가 자기계발서 ‘느리게 더 느리게’의 사재기를 적발한 데 이어 추가로 3건의 사재기의혹을 조사 중이다. ‘느리게 더 느리게’의 경우 대형 온라인 서점의 아이디 여러 개로 대량 구매해 출판사 대표 집에 400여 권을 배송시키는 수법 등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 상반기 베스트셀러, 알고 보니 사재기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느리게 더 느리게’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과정에서 사재기가 드러나 해당 출판사(도서출판 다연)에 대한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고 20일 밝혔다.
하지만 진흥원 조사 결과 해당 출판사는 대형 온라인서점 회원 아이디 여러 개를 활용해 20∼30권씩 책을 구입한 뒤 특정 장소에 배송되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출판사 대표의 자택으로 400여 권이 배송됐다. 진흥원은 5월경 이 책이 중복·다량 구매된 사실을 발견하고 6월 현장 조사를 통해 사재기 과정을 밝혀냈다. 다연 박은서 대표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정부 조사 때 (사재기를) 인정했다”고 밝혔다.
○ 더욱 은밀하게 교묘하게
지난해 5월 황석영 작가(71)가 외친 절규다. 당시 그의 소설 ‘여울물 소리’에 대한 사재기 의혹이 일었다. 황 작가는 “전혀 몰랐던 일”이라며 출판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선언했고 출판계 전체가 아수라장이 됐다. 이후 출판계는 강도 높은 사재기 규제 협약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번 조사로 사재기가 여전히 근절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수법도 교묘해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진흥원의 이상현 출판유통팀장은 “사재기 조사는 온라인에서 특정 회원 아이디로 대량·중복 구매한 경우를 모니터링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새로운 수법은 적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 중소출판사 대표도 “자본력이 있는 출판사만 은밀하게 쓰는 수법”이라고 귀띔했다.
출판사들이 브로커를 이용해 대형 온라인서점에서 제공하는 각종 쿠폰, 적립금으로 신간을 구매한 후 중고서점에 되파는 식의 사재기 수법도 조사하고 있다. 또 저자 B 씨가 지인을 통해 책을 다량 구매하는 방식으로 최근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는 의혹도 파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베스트셀러 위주의 출판 시장 구조가 근원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편법을 쓰더라도 일단 순위에 올려놓으면 판매에 탄력이 붙기 때문에 ‘한방’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는 것. 과거 사재기가 적발되면 출판문화산업진흥법상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만 내면 됐다. 7월 29일부터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됐다. 또 ‘북파라치’ 제도 시행으로 책 사재기 신고건당 200만 원 이하의 포상금이 지급된다. 한국출판인회의 고흥식 사무국장은 “대형서점 베스트셀러에 노출돼야 책이 겨우 팔리는 상황이라 법이 강화돼도 사재기 근절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