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현 경제부장
레이거노믹스, 부시노믹스, 클린터노믹스, 오바마노믹스 등 미국의 역대 경제정책은 대통령의 성을 따랐다. 일본의 아베노믹스 역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이름에서 따왔다. 버냉키노믹스 같은 예외가 있지만 벤 버냉키는 ‘세계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었다.
정치지도자 이름을 반영한 경제정책 작명법이 한국에 처음 등장한 건 김대중 정부 때였다. 외환위기와 함께 들어선 김대중 정부는 ‘DJ노믹스’를 추진했다. 이어 노무현 정부의 ‘노(盧)노믹스’, 이명박 정부의 ‘MB노믹스’가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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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게 달라졌다. 내수가 바닥까지 추락하자 경제주체들은 답답한 상황을 타개할 과감한 정책이라면 언제라도 박수칠 준비가 돼 있었다. 역설적으로 최 부총리로서는 제일 좋은 타이밍에 등판한 셈이다. 그가 쏟아낸 정책은 전과 많이 달랐다. 적자재정을 무릅쓴 재정확대, 내수부양을 위한 금융 및 세제지원, 한국은행을 통한 금리인하 등 단기부양책의 종합판이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의 완화, 배당확대 세제 도입 방침에 부동산 시장과 증시가 뜨겁게 반응했다. 이어 7·30 재·보선에서 여당 압승의 1등 공신으로 최 부총리의 경기부양 정책이 꼽혔다. 정치적, 경제적 모멘텀을 바꾸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렇게 최노믹스는 근혜노믹스 ‘브랜드’가 빛을 잃은 타이밍에 대안으로 등장했다. ‘근혜노믹스 3.0’이 아닌 이유다. 이런 점에서 최노믹스는 경제적이라기보다 철저히 정치적 현상이다. 재정적자와 가계부채 확대에 대한 우려, 기업소득 환류세제 등의 문제점도 흐름을 막진 못했다. 고집 세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한국은행이 어쩔 수 없이 끌려갈 정도의 흡인력도 이런 힘에서 나왔다.
정치적이란 이유로 최노믹스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모든 정책(政策)은 어차피 정치적이다. 인플레이션을 통한 세수(稅收) 확대와 가계부채 완화, 주가와 집값 상승을 통한 ‘부(富)의 효과(wealth effect)’ 확대 등 최노믹스의 방향은 단기적으로 맞아 보인다. 최를 영어식 ‘초이’로 읽어 만든 ‘초이노믹스’는 너무 작위적이라 개인적으로 거부감이 크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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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