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효·대구경북본부장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경북대 총장이 누구인지도 잘 모른다. 대학이 흔해진 탓도 있지만 총장으로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저 옛날의 영광에 안주해 세상의 변화에 둔감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현 함인석 총장의 임기가 이달 말로 끝나는데도 아직 차기 총장(18대)을 선출하지 못하는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아직도 경북대 홈페이지 공지사항에는 올해 6월 총장 선출 결과를 알리는 내용이 실려 있다. 선출 과정에서 규정 위반이 불거져 다시 선출하기로 했는데도 말이다. 6월 선거는 교수 중심의 총장후보선출위원 48명이 후보자를 결정했지만 단과대의 경우 규정상 선출위원이 3명인데 4명이 배정돼 투표했다. 선출이 끝난 뒤에야 규정 위반이 발견돼 총장 선출을 새로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대학본부와 교수회, 선출위원회는 23일 다시 선출하기로 했다지만 공식 기구가 아직 구성되지 않아 이마저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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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가 총장 선출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수준이 곤두박질했는데도 본부와 교수회는 여전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시대에 뒤떨어진 경북대의 총체적 무능을 드러낸다. 직원들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교수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옹호하기 위한 한심한 작태”라고 비꼬았으며 일부 교수들은 “원칙을 잃고 방황하는 경북대의 모습이 처절하고 가슴 아프다”는 의견을 보였다. 한 직원은 “이미 만신창이가 됐는데 총장을 뽑으면 뭐하냐”고 했다.
서울대보다 유명해진 대학 아닌 대학이 이른바 ‘부실대’이다. 원래부터 부실대가 있는 게 아니라 지금의 경북대처럼 총장조차 선출하지 못하는 부실한 모습이 곧 부실대이다. 국립대와 사립대, 일반대와 전문대, 수도권대와 지방대 같은 구분이 점점 무의미해지는 시대이다. 대학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총장들이 밤낮없이 뛰고 있는 상황에서 경북대는 이해관계에 얽혀 총장도 선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름값을 못한다’는 뼈아픈 반성과 부끄러움은커녕 이리저리 찢겨 싸움판이나 벌이는 게 지금 경북대의 초라한 자화상이다.
이권효·대구경북본부장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