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진 소비자경제부 차장
반스앤드노블과 아마존이 온·오프라인에서 몸집을 불리는 사이 2위 대형 서적체인인 보더스가 문을 닫아야 했다. 위협을 느낀 동네 서점 주인은 생존을 위해 저자와의 만남을 기획했다. 저자들은 마케팅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섭외 요청에 처음에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점 주인이 어렵게 내디딘 발걸음이 쌓여 이제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이렇게 자신만의 색깔로 ‘골리앗과 맞서는 다윗’을 미 도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뉴욕 특파원 시절의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리게 한 출발점은 막걸리였다. 2011년 7월 한국을 떠날 때만 해도 막걸리 시장은 르네상스를 구가하고 있었지만 3년 만에 접한 시장은 딴판이었다. 맥주와 소주, 와인은 매년 신장세를 이어갔지만 막걸리만 소비량이 급감했다.
논란이 뜨거워지자 전국 150여 개 양조장이 가입돼 있는 한국막걸리협회가 11일 ‘대기업 진입은 500개 중소 막걸리 업체의 폐업을 불러올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다음 달 대통령직속 동반성장위원회가 중기 적합업종제도 도입 3년을 맞아 막걸리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고추장 세탁비누 등 100개 업종의 재지정 작업에 들어간다. 대기업과 중소 및 영세업체는 본격적인 대결 국면으로 접어든 모양새다.
당장 생존이 어려운 영세업체를 시장경쟁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적자생존으로 그냥 내모는 것도 정부가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중기 적합업종도 경제시스템을 왜곡하는 일종의 규제라는 점에서 효과를 면밀히 분석하는 작업을 도외시할 수 없다. 최근 미 식품의약국이 처음으로 경제학자에게 의뢰한 ‘담배 규제’에 대한 규제영향평가는 흥미롭다. 경제학자들은 금연으로 인해 줄어든 행복의 양이 금연으로 얻은 건강의 70%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 정도의 꼼꼼한 규제영향평가는 기대하지 않는다. 3년 전 여론에 밀려, 보이지 않는 정치적인 이유로 서둘러 제도를 도입했던 실수를 재지정 때는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한다. 미국 한 동네 서점의 혁신도 참고했으면 좋겠다. 중소업체들이 이 제도를 재기의 발판으로 삼고 있는지, 경쟁을 피하는 울타리로만 여기고 있는지도 주요 평가지표가 될 것 같다.
박현진 소비자경제부 차장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