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0년에는 (인간의 생각을 텍스트 메시지로 만들어 보내는) 기기를 신체에 이식해 말하지 않고 생각만으로 타인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된다. ―‘유엔미래보고서 2040’ 박영숙 외 지음 교보문고·2013년》
‘사토라레’라는 일본 영화가 있다. 사토라레는 그의 생각이 주변 사람들에게 모두 들리는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른다. 영화는 한 젊은 외과의사가 사토라레로서 겪는 갖가지 일들을 보여준다. 일터에서 처음 만나는 여성과 인사를 하면서 ‘노땅이잖아’라고 생각하면 그 ‘노땅’이 그 소리를 듣는다. 그의 속마음을 듣는 이들은 당황하며 표정이 일그러진다.
유엔미래보고서는 ‘인간의 생각을 텍스트 메시지로 만들어 보내는 기계’가 2040년에는 실용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크기가 작아 사람 몸에 이식할 수도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장치는 말을 할 수 없거나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하며, 이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한편으로는 오죽 답답하면 다른 이의 생각을 읽는 장치를 개발하려고 할까라는 생각도 든다. 상대의 속마음을 읽는 게 그만큼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기술의 도움을 받아 상대의 속마음을 알아내기를 원하기에 앞서 자신이 상대와의 대화에 얼마나 열성적으로 임하는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대화는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몸짓, 표정, 눈빛, 목소리로도 하는 것이다. 대화를 할 때 상대가 보내는 여러 가지 사인에 주목하면 굳이 기술의 도움이 없더라도 상대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는 알아낼 수 있을 텐데.
김현지 기자 n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