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치부 차장
‘일개’ 지방청장이 실세 비서관에게 맞선 것이다. 그가 ‘객기’를 부린 건 ‘든든한 백’이 있어서다. 바로 김영삼(YS) 대통령이었다. 1991년 이 원내대표의 모친상 때 우연히 상가를 찾은 YS는 ‘엘리트 경찰 이완구’를 머릿속에 입력해뒀다. 대통령이 된 YS는 1993년 충북 방문 당시 충북청장이던 이 원내대표를 만나자 박관용 대통령비서실장 등에게 “이완구는 내 친구”라고 소개해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YS는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이 원내대표를 차출했다. 당시 자민련이 충남을 싹쓸이할 때 이 원내대표는 여당의 유일한 생존자였다. 그러니 얼마나 기특했겠나. YS는 초선 의원 이완구에게 전화를 걸어 “장관을 시키고 싶은데 아직 초선이니 당 대표 비서실장부터 하라”며 당직을 챙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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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에겐 모두 역린이 있었다. 역린을 건드린다는 건 용기의 문제가 아니다. 때론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과 맞선 정두언 의원처럼 말이다. 하지만 역린이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될 때 정권은 예외 없이 곤두박질쳤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전 보좌관 출신 정윤회 씨 논란을 현 정부가 역린으로 방치해선 안 된다. 정 씨는 인사 비선(秘線) 의혹을 넘어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을 몰래 만난 당사자로 떠올랐다. 한국 신문의 한 칼럼에서 소개한 풍문(風聞)은 일본 신문에까지 보도되면서 점점 그럴싸한 얘기가 돼가고 있다.
청와대는 정 씨 얘기만 나오면 질겁한다. 박 대통령이 이 문제에 얼마나 예민한지 아는 탓이다. 너무 황당무계해 예민할 수도 있다. 또 정 씨 관련 의혹은 아직까지 실체가 없다. 없는 것을 없다고 밝히는 것도 난감한 일이다. 하지만 청와대의 침묵은 세간의 호기심을 점점 자극하고 있다. 조사할 사안이 아니라면 명쾌한 해명이라도 있어야 한다. 지금은 정 씨의 행적보다 청와대의 침묵이 더 미스터리다.
이재명 정치부 차장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