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택 기자
6·4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진보 교육감들이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폐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30일 자사고 학부모들이 서울시교육청을 찾았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자사고 폐지 정책에 항의하고자 면담을 요구한 것. 조 교육감과 학부모들은 시교육청 접견실에서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잠시 뒤 학부모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방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는 자신의 아이도 조 교육감처럼 외고에 보내고 싶었지만 아이의 뜻을 존중해 보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래도 공부는 시켜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게 자사고였다”며 “왜 우리 아이가 다니는 자사고는 나쁜 학교라며 없애려 하고(지정 취소), 교육감님 아들이 졸업한 외고는 가만두느냐”면서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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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교육감들이 공통공약으로 내걸었던 자사고 폐지를 추진하는 것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공약은 투표장에서 한 표를 행사한 유권자와의 약속이고 원칙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5년째 학생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를,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된 교육감이 지정 취소를 하려 한 것은 조급했다. 재지정 평가방법이 부실하게 만들어졌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조 교육감은 결국 공약시행을 1년 뒤로 미뤘다.
조 교육감이 ‘자사고 폐지’ ‘혁신학교 확대’ 같은 큰 그림에만 매달리는 사이 모의고사는 ‘예산 부족’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취소됐다. 서울의 고교 1, 2학년생 20만 명이 볼 시험이었다. 인터넷에는 시험을 준비해 온 학생들의 허탈한 심정을 담은 글이 잇따랐다.
큰 정책을 집행하거나 바꾸는 과정에서 변화로 인한 피해는 늘 존재한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정책은 없기 때문에 일부 희생을 감수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결정에 대한 고민이 좀 더 깊어져야 할 때가 있다. 특히 피해자가 아이들일 때 더욱 그렇다. 세월호 참사가 전 국민의 분노를 샀던 것은 사상자가 많았다는 점뿐만 아니라 희생자 대부분이 앳된 고교생이었기 때문이다. 자라나는 청소년은 성인들보다 더 특별하게 보호받아야 한다.
‘나무보다 숲을 보라’는 말이 있다. 일을 할 때 큰 그림을 먼저 보라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조 교육감은 숲을 보는 정성만큼 나무도 세심히 봐야 할 것 같다. 조 교육감의 결정에 따라 베어질지 모르는 한 그루, 한 그루가 바로 우리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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