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식 정치부 차장
개 호루라기는 사람에게는 잘 들리지 않지만 개를 비롯한 동물들이 잘 들을 수 있는 고주파 신호를 만들어낸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메시지가 모두에게는 아니지만, 특정 극우파에 잘 어필한다는 점을 빗댄 표현이다.
이런 식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유엔 고문방지위원회의 권고(2013년 5월)에 대해 아베 총리는 올해 초 “우리 생각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사실 오인에 의한 일방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은 2월에 극우지 산케이신문은 “고노 담화의 근거가 된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 16명의 증언이 엉터리였다”고 보도했다. 극우 정당인 일본유신회의 야마다 히로시(山田宏) 의원은 이를 받아 “고노 담화가 한일 간 정치 타협의 산물인지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아베 내각은 검증에 착수했다. 아베 총리의 ‘고주파 신호’를 포착한 극우파 삼총사가 군사작전을 벌이듯 움직인 셈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지난달 20일에 나온 고노 담화 검증 결과보고서는 담화의 의미를 퇴색시키기에 충분한 움직임이었다.
그런 일본이 한국에 대한 태도 변화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시작은 아베 총리였다. 아베 총리는 17일 한국 주요 언론사 고위 방문단을 만나 “양국 간에 어려운 문제가 있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솔직한 의견 교환을 해야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직후인 18일 한일 의원연맹은 내년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에 앞서 연내 한일 정상회담 실현 분위기 조성에 나서기로 했다. 또 일본 공영방송인 NHK는 한류 드라마를 방영하기로 했다. 박 대통령은 25일 청와대에서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일본 도쿄도지사를 만났다.
한국 정부는 아직은 일본의 움직임이 부담스럽다는 표정이다. 만나기만 해도 일본은 소득을 얻지만, 한국 정부는 일본의 태도 변화라는 가시적 성과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한일 관계의 방향도 불분명하고, 아베 총리가 역사 인식을 바꿨을 가능성도 크지 않다. 하지만 과거사 왜곡을 앞세우는 퇴화된 방식을 탈피하겠다는 의사만큼은 담은 것으로 보인다.
고노 담화도 성에 차지 않는 우리 정서를 고려하면, 아베 총리의 과거 행보는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마냥 일본과의 만남 자체를 저울질할 수만은 없다. 그보다는 한일 관계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출발점을 위해 어떤 고민을 하느냐가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 핵문제,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명멸하는 다양한 협력 파트너의 등장에도 대응해야 할 만큼 국제정세는 위중하기 때문이다.
김영식 정치부 차장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