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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rative Report]법을 속인 행복의 꿈… 그건 악마의 덫이었다

입력 | 2014-07-10 03:00:00


‘이제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단 하루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정상적인 신분으로 딸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지난날의 잘못을 백 번 반성하고 앞으로 우리의 고국 한국 땅에서 부끄럽지 않은 동포 신분으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반복된 동포들의 비극을 헤아려주시고….’

중국 동포 송해련(가명·41·여) 씨는 지난달 3일 기자와 만나기 앞서 이런 내용이 담긴 ‘사실 확인서’라는 글을 A4용지 2장 분량 써둔 상태였다. 그는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등본, 그리고 각종 판결문 서류를 주섬주섬 꺼내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외동딸 윤지(가명·5)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엄마의 팔에 매달려 커다란 눈을 깜빡거렸다.

○ 달콤해 보인 ‘불법의 유혹’

송 씨가 한국에 첫발을 디딘 건 1996년. 그는 ‘산업연수생’(중소기업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연수생 신분으로 도입된 외국인력)이었다. 중국에서 다녔던 회사는 한국에 보내주는 조건으로 그에게 약 365만 원을 요구했다. 송 씨는 빚을 내서 겨우 비용을 마련했다.

첫 직장은 경기 화성시의 전자업체 공장이었다. 단순 노무로 일해 받은 월급은 30만 원대. 중국에서 받던 월급(약 12만 원)보다는 많았지만, 생활비를 쓰고 나면 1년을 벌어도 빚을 갚기엔 역부족이었다.

산업연수생은 임의로 근무지를 바꾸면 불법체류자가 된다. 송 씨는 일단 빚을 갚자는 생각으로 공장을 나왔고, 불법체류 신분으로 여러 직장을 전전했다. 힘들기도 했지만 70만∼80만 원대의 월급을 받을 때면 ‘노력만 하면 돈을 벌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했다.

송 씨는 어느 날 일터에서 또 다른 산업연수생 중국 동포(41)와 마주쳤다. 중국에서 알고 지내던 학교 동창이었다. 고된 한국 생활에 지쳐있던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다. 2000년 즈음부터는 동거를 시작했다. 불법체류자이기에 혼인신고를 하거나 결혼식을 올리진 못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일만 하며 살았다. 하지만 송 씨도 여자였고, 아내였다. 나이가 들면서 ‘나도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년간 노력 끝에 2008년, 임신에 성공했다.

지인들은 불법체류자의 임신을 축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법체류자가 아이를 낳으면 호적도 없고 병원 이용 문제로 어려움이 가중된다”며 겁을 줬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는 한국에서 살던 고모(44)에게 고민상담을 했다. 고모는 송 씨에게 “한국인과 결혼하면 만사형통이라더라”며 자신의 남자친구인 김모 씨(41)를 소개했다. 김 씨와 위장결혼을 하면 결혼이민비자를 받을 수 있고, 아이를 한국 호적에도 올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김 씨는 마냥 성격 좋고 말 잘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는 어떤 조건도 달지 않고 위장결혼을 승낙했다. 송 씨가 한국국적을 얻으면 이혼해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2009년 6월, 두 사람은 경기 안산시 상록구청에 혼인신고를 했다. 한 달 뒤 윤지가 태어났고, 김 씨의 호적에 올라 한국인이 됐다. 송 씨도 불법체류 신분을 벗어나 결혼이민자로 살기 시작했다.

○ 범죄의 쓰디쓴 대가

체류 문제만 어떻게든 해결하면 마음 편히 살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김 씨는 혼인신고가 끝나자 180도 다른 사람으로 돌변했다. 그는 김 씨 부부에게 “장사에 투자할 돈이 필요한데, 나는 돈이 없으니 당신들이 달라”고 요구했다. 돈을 주지 않으면 술을 마실 때마다 “위장결혼을 폭로해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송 씨 부부는 월급뿐 아니라 집 보증금까지 빼서 돈을 건넸다. 보통은 100만∼200만 원, 한 번은 1000만 원을 뺏기다시피 돈을 줬다.

김 씨는 허구한 날 ‘진짜 남편’을 불러내 밥을 사달라고 했다. 남편은 일을 마친 뒤면 시도 때도 없이 불려나가 그를 접대했다. 부부는 고통스러웠지만,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를 지켜보던 고모마저 인내심에 한계를 느꼈다. 결국 위장결혼을 한 지 1년쯤 됐을 때, 고모는 김 씨에게 그간의 행태에 대해 항의했다. 이날 두 사람의 다툼은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김 씨는 폭행 혐의로 경찰에 입건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위장결혼을 폭로해버렸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가짜 남편은 사기 등으로 전과가 수차례 있던 사람이었다.

수원지검 안산지청은 송 씨에게 출석을 요구했다. 위장결혼 때문이었다. 두려웠지만, 더이상 김 씨로부터 협박과 수모에 시달리지 않을 거란 생각 때문에 속이 후련하기도 했다.

문제는 아이였다. 윤지는 돌이 갓 지난 상태였다. 위장결혼으로 처벌을 받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송 씨는 결국 검찰에 출석하지 않았다. 전화번호도 바꾸고, 집 주소도 옮겼다. 자연스레 김 씨와 연락도 끊어졌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게 잠잠해질 줄 알았다.

몇 달 뒤, 송 씨는 가짜 남편과의 인연을 확실히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용기를 내 남편이 가출했다며 이혼소송을 냈고, 친권과 양육권을 모두 얻었다. 재판부는 김 씨에게 아이 양육비로 2011년 5월부터 2029년 7월까지 매월 3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도 내렸다.

이제 ‘서류상 한국인’인 딸과 함께 조용히, 조심스레 살면 될 것 같았다. 송 씨는 수원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아 체류연장 신청을 했다. 경찰과 검찰만 피하면 누구도 위장결혼 사실을 문제 삼지 않을 거라고 순진하게 믿었다. 뜻밖에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위장결혼으로 기소중지가 돼 있으니 재판을 받고 오라”고 했다. 송 씨는 제 발로 법원을 찾아가야 했다.

○ 여전히 치러야 할 고통

지난해 5월,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은 송 씨의 위장결혼에 대해 징역 4개월, 집행유예 2년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위장결혼으로 금고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은 외국인은 ‘강제퇴거 대상자’가 된다. 보통의 경우 일단 외국인보호소로 보내지고, 이후 강제출국 조치가 된다.

이즈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이의 친아빠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했다. 더이상 한국에서 살고 싶지 않고, 중국으로 떠난다는 것이었다. 그는 가짜 남편에게 시달리던 한국 생활에 몹시 지쳐 있었다. 둘은 어차피 혼인신고를 한 사이도 아니었다. 그렇게 모녀는 덩그러니 남겨졌다.

송 씨의 체류 허용기간은 지난해 8월까지였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한국 국적인 윤지를 엄마와 생이별시킬 순 없었기에, 인도적인 사유로 강제퇴거 조치를 하진 않았다. 그 대신 “아이의 호적을 정리하고 주한중국대사관에 가서 중국여권을 만들어 출국하라”고 종용했다.

송 씨는 인생의 거의 절반인 18년을 한국에서 살았다. 이제 와서 중국에 가면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몰랐다. 그는 “아이도 이미 컸는데 대사관에서 중국 국적을 안 줄 것 같다”며 “설령 국적을 줘도 중국에서 살길이 막막하기 때문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궁지에 몰렸을 때 브로커가 다가왔다. 브로커는 “위장결혼 판결을 받고도 비자를 연장해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한국 고위직 사람도 여럿 안다”며 으스댔다. 딱히 해주는 일은 없었지만 매번 “일을 진행할 경비가 필요하다”며 20만∼50만 원을 요구했다.

브로커는 송 씨를 경기 부천시의 이주민 지원기관인 경기글로벌센터로 데려갔다. 상담을 주선할 때마다 뒤에서 돈도 요구했다. 송 씨는 몇 차례 돈을 뜯긴 뒤에야 경기글로벌센터가 무료 상담기관이며, 센터 측은 브로커가 몰래 뒷돈을 받는지도 몰랐다는 걸 알게 됐다.

송 씨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송 씨가 스스로 아이의 중국여권을 만들지 않는다고 정부에서 강제로 호적을 말소하고 중국여권을 만들어줄 순 없다. 그 대신 그는 불법체류자 신세로 살게 되기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진다. 만약 송 씨가 일단 중국으로 출국하면, 5년간은 한국에 들어올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출국한 외국인은 5년간 입국 규제를 받기 때문이다.

물론 위장결혼 판결을 받았다 하더라도 한국 국적의 자녀를 양육하고 있으면 심사를 거쳐 합법 체류를 할 수도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하지만 이 경우는 자녀가 실제로는 한국 국적자가 아니므로, 자녀를 양육하기 위한 체류 허용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송 씨는 한때 결혼비자를 받아 남편과 한국에서 살면서 아이를 키우고 돈도 버는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남편도, 가짜 남편도 모두 그를 떠났다. 그동안 번 돈마저 가짜 남편과 브로커에게 대부분 뜯겼다. 그는 월세 30만 원의 반지하방에 딸과 단둘이 남아 있다.

유치원에 다니는 딸은 한국어밖에 할 줄 모른다. 엄마의 위장결혼도 모른다. 지금도 딸의 가족관계등록부에는 가짜 남편의 이름이 ‘父(부)’로 기재돼 있다. 송 씨는 말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다신 불법적인 선택을 안했을 것 같아요. 이건 아니었는데….”

법무부가 적발한 위장결혼 건수는 2010년 30건에서 지난해 90건으로 늘었다.

수원·부천=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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