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흡 산업부 차장
그는 “골프장을 동원할 정도로 예산 증액은 정부 부처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며 “예산을 조금이라도 더 따내기 위해 다른 부처 국장이 기획원 사무관을 접대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회고했다.
기재부는 공무원들 사이에서 ‘갑중의 갑’ 부처로 통했다. 정책 조정 기능을 가진 선임 부처이기도 했지만 예산실을 통해 예산을 통제하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돈줄을 쥐고 있는 기재부에 다른 부처가 공개적으로 반기를 드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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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는 정치권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개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예산실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기재부가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달 26일 자동차 연비 재검증 결과를 발표한 정부 합동 브리핑이 대표적인 사례다. 자동차 업계나 소비자들은 ‘힘 있는’ 기재부가 주도하는 이날 브리핑으로 ‘연비 부풀리기’ 논란이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봤다. 결과는 딴판이었다. 국토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서로 다른 얘기를 했다. 옆에 있던 정은보 기재부 차관보는 “정부가 같은 차량의 연비에 대해 통일된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게 된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날 상황을 TV 뉴스로 지켜본 전직 고위 관료는 “정책 조율 과정에서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국민을 상대로 한 브리핑에서 불협화음을 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한때 다른 부처를 압도했던 기재부가 이제는 ‘아 옛날이여’를 외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기재부에 힘을 실어줬던 것은 기재부가 예뻤기 때문이 아니다. 얽히고설킨 정부 부처 간 이해관계를 기재부가 나서서 조정하라는 뜻이었다. 정책 혼선이 빚어지면 애꿎은 국민만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예산편성권이라는 막강한 ‘무기’를 쥐여준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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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던 마오쩌둥(毛澤東)의 말을 되새겨 봤으면 좋겠다. 예산 앞에서 자유로운 정부 부처는 없다.
송진흡 산업부 차장 jinh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