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3일 방한] 시진핑 주석 동행 펑리위안 여사는
이러한 펑 여사의 개방적이고 소탈한 모습은 이후 해외 순방 때마다 계속 이어졌다. 펑 여사는 덩샤오핑(鄧小平) 이래 중국의 ‘제1부인(퍼스트레이디)’은 대외 활동에 나서지 않는 관례를 깼다. 뛰어난 패션 감각까지 갖춘 펑 여사의 활발한 ‘퍼스트레이디 외교’에 세계 언론들이 주목하고 있다. 그가 들고 나오는 가방과 입고 있는 옷은 바로 중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품귀 사태를 빚을 정도다. 시 주석이 러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유럽 등 어디를 방문하든 남편에게 뒤지지 않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중국의 퍼스트레이디가 인민해방군 소속 현역 소장(한국의 준장)이라는 점도 이채롭다.
이번 시 주석의 방한에 동행하는 펑 여사는 한국에서도 한국의 전통 문화를 체험하는 등 ‘인문 외교’에 나설 것이라고 외교 소식통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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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칭도 마오 전 주석 사망 이후 덩샤오핑이 권좌에 오르면서 4인방(幇)의 우두머리로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후 무기로 감형됐으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덩샤오핑 이후 중국의 ‘제1부인’들이 공개적인 활동을 하지 않거나 못한 데는 장칭의 영향이 적지 않다.
1962년 산둥(山東) 성 윈청(O城) 현에서 1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난 펑 여사는 외가 쪽이 지주 집안이었다. 아버지 펑룽쿤(彭龍坤)은 고등학교 졸업 학력이지만 당시에는 높은 교육수준이어서 문화관 관장을 하며 야간학교도 운영했다. 어머니는 현 가무단의 연기자였다. 어머니는 소달구지를 타고 마을을 다니며 연기를 했고 펑 여사는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자랐다. 예술가 재능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셈이다. 펑 여사도 인민해방군의 가무단에 소속돼 군부대를 찾아다니며 공연했다.
문화대혁명 때는 외가가 지주 집안이고 아버지는 ‘먹물’ 지식인이라는 이유로 핍박을 받았다. 아버지는 홍위병들이 세상을 흔들 때 한동안 공중화장실 청소부로 전전했고 어머니는 가무단 무대에서 내려와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군 가무단에서 활동하던 펑 여사는 20대 초반 시 주석과 만나기 전부터 국민적 스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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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 여사는 남편에 대해 “그의 친구 중에는 외국에 나가 큰 부자로 성공한 사람도 있다. 그도 외국에 나갈 기회가 있었지만 국민의 공복이 되는 험난한 길을 택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말했다(가오샤오의 ‘대륙의 리더 시진핑’에서). 그가 시 주석의 반부패 개혁이나 외교 전선에서 든든한 내조자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