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LP시장의 그늘진 속사정
LP레코드는 기획부터 생산까지 5∼6개월이 소요되는 ‘슬로 미디어’다. 유행 주기가 극단적으로 짧은 가요시장에서 이걸 제작하는 건 시트콤 시간대에 대하드라마를 방송하는 것만큼 비현실적이다. 김밥레코즈 제공
아이유의 LP레코드 ‘꽃갈피’ 표지.
최근 미국 록 가수 잭 화이트의 신작 ‘라자레토’는 음반시장을 떠들썩하게 할 만한 기록을 세웠다. 발매 첫 주에만 4만 장의 앨범이 LP레코드 형태로 팔려나간 것이다. CD와 디지털앨범을 합친 전체 판매량 13만8000장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수치. 1991년 닐슨 사운드스캔이 미국 내 LP 판매량 집계를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첫 주 판매량이다. 1994년 록 밴드 펄잼의 ‘바이털로지’가 세운 기록(3만4000장)이 20년 만에 깨졌고, ‘라자레토’는 지난주 빌보드 앨범차트 정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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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의 레코드가 독일에서 만들어지는 이유는 이런 흐름과 연관 있다. 경기 김포에 있는 국내 유일의 LP레코드 공장은 아직 대량 생산을 감당할 설비를 갖추지 못했다. 미국의 LP레코드 공장들은 밀려드는 자국 내 주문만으로도 과열 상태. 해외 수주를 소화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이유 LP레코드 제작을 대행하는 열린음악의 김봉현 대표는 “미국 공장에는 제작 물량이 3개월 치나 밀려 있는 상황이어서 대부분의 LP 제작을 독일에 의뢰하고 있다”고 했다.
○ LP레코드, 한국에서도 빵 터질까
‘꽃갈피’의 LP레코드 발매는 국내 젊은 여가수가 처음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측면에서 그 의의가 적지 않다. 지금껏 국내에서는 지드래곤처럼 큰 규모의 충성도 강한 팬덤을 지닌 남성 아이돌 몇몇만이 고가의 희귀 기념품 격으로 LP레코드를 내왔다. 디지털 위주로, 주(週) 단위로 시장이 요동치는 국내 가요판에서 기획부터 생산까지 반 년이 소요되는 LP레코드 제작은 비현실적이다.
아이유 소속사 로엔트리의 김정민 A&R팀 차장은 “‘꽃갈피’는 기획 단계부터 LP레코드 발매를 염두에 뒀다”고 했다. 아이유 팬덤의 다수를 점하는 중장년층 ‘삼촌 팬’이 동인이 됐다. 조덕배, 이문세, 산울림의 노래를 아날로그 감성으로 리메이크하고 이를 삼촌 팬이 음악을 소중하게 다루며 즐기던 시절의 향수를 자극할 LP레코드로도 판다는 맥락은 다분히 전략적이다. 소비자 가격이 4만 원이 넘지만 24일까지 12일 동안 예약 구매자가 3000명을 넘어섰다. 예약 구매자에게 한정판매할 계획이다. ‘꽃갈피’ LP레코드에는 CD나 디지털 앨범에 없는 옛 건전가요 ‘어허야 둥기둥기’도 아이유의 목소리로 녹음돼 들어갔다. 김봉현 열린음악 대표는 “아이유의 레코드 제작은 국내 LP 시장 이륙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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