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첫 바티칸 大法 변호사 된 한동일 신부… 자전 에세이집 펴내
동아시아인 최초로 로마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가 된 한동일 신부. 그는 “남들보다 모자라고 느린 내가 로타 로마나 변호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내 꿈이 무엇인지 알고 더디지만 끝까지 걸었던 덕분”이라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서강대 라틴어 강사인 한동일 사무엘 신부(44). 그는 2010년 로마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Rota Romana)’에서 동아시아인 최초로 변호사로 임명됐다. 최근 자신의 인생 얘기를 담은 에세이집 ‘그래도 꿈꿀 권리’(비채·사진)를 펴낸 그를 23일 서강대에서 만났다.
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로타 로마나는 세계 가톨릭교회의 민·형사 소송과 행정소원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리는 상설 법원. 매년 1만 건이 넘는 소송이 이곳에서 처리된다. 한 신부는 세계에 930명뿐인 로타 로마나 변호사 중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한국인이다. 사제품을 받은 이듬해인 2001년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라 교황청립 라테란대에서 교회법을 연구해 석사와 박사를 받았다. 두 과정 모두 최우등(숨마 쿰 라우데) 졸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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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라틴어 ‘로타’는 수레바퀴라는 뜻이다. 대법관들이 수레바퀴처럼 둥근 원탁에 둘러앉아 판결을 논의한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한동일 신부 제공
“유럽 학생들도 ‘죽은 언어’라며 배우기 힘들어하는 라틴어를 한국인이 공부하려니 매 순간이 좌절과 도전의 연속이었지요. 대입 수험생처럼 사전을 통째로 외운 날도 있었어요. 지옥의 언어 훈련소가 있다면 바로 여기겠다 싶었지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역만리 타향에서 건강이 악화돼 연수원 진급시험에 떨어지기도 했고, 2009년 응시한 첫 변호사 시험에선 낙방의 쓴맛을 봐야 했다.
한국에서 말기암과 싸우고 있는 노모 걱정에 “다른 신부들처럼 살았어도 좋았을 텐데”라며 후회한 날도 있었다. 재수 끝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연수원 입학 동기 40명 중 시험을 통과한 이는 그를 포함해 3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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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신부는 학기 중에는 라틴어를 가르치고 방학 때면 이탈리아 법무법인으로 날아가 로타 로마나의 소송 변론문을 쓰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계속 일하는 게 저나 한국 교회를 위해 이득 아니냐고 말씀해 주는 분들도 계시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공부하는 동안 넘치도록 받은 사랑과 은혜를 제자에게 되돌려 주는, ‘남 주는 공부’를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그의 꿈은 가난하지만 꿈과 재능 있는 청년을 돕는 재단을 세우는 것이다. “저는 우리 각자가 한 그루 나무와 같다고 생각해요. 타인이 기대어 쉴 수 있는 큰 나무의 마음을 갖도록 청년들을 키워내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이 세상으로 널리 퍼져 나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바로 기적 아닐까요?”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