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종교적 신념에 ‘무수혈 수술’… 피해감수 각서 쓰고 수술중 숨져 “자기결정권 존중 처벌못해” 판결
종교적 신념에 따라 수혈 받는 것을 거부한 환자가 수술 도중 과다 출혈로 사망했어도 의사에게 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26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의사 이모 씨(57)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자녀의 수혈을 거부한 부모가 유기치사죄로 처벌받은 사례는 있지만 환자 스스로 내린 수혈 거부 결정에 대한 의사의 책임 소재를 따진 건 처음이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A 씨(당시 62세·여)는 2007년 인공고관절 수술을 받으려 했다. ‘다른 사람의 피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교리에 따라 병원 3곳에 무수혈 방식 수술이 가능한지를 문의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나 의사 이 씨는 검사 결과 등을 토대로 무수혈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다. A 씨는 수술하기에 앞서 ‘무의식이 되더라도 수혈을 원치 않는다는 방침은 변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야기되는 피해에 대해 의료진에게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다. 하지만 수술 도중 과다출혈로 인한 폐부종으로 사망했다.
다만 재판부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생명과 대등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나이, 지적능력, 가족관계, 수혈 거부 의사가 상당 기간 지속된 확고한 종교적 신념에 기초한 것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