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종군사진가 이명동씨가 기록한 ‘그날, 그 사람들’ 입대해서 처음 글 배워 아버지께 편지 또박또박 “훌륭한 군인이 된 모습 사진 한장 찍어줄수 있습니까” 편지 들고 해맑게 웃던 병사, 이튿날 전투를 마지막으로…
소총에 인형 달고… 이명동 월간 ‘사진예술’ 고문이 6·25전쟁 당시 전선에서 찍은 어느 병사의 사진. 군대에서 한글을 배워 아버지께 처음 쓴 편지를 든 앳된 병사의 얼굴에서 자부심이 느껴진다. 아래쪽 작은 사진은 전쟁 중 국군이 눈 속에서 행진하는 모습. 이명동 고문 제공
이명동 씨
한국 사진계 원로인 이 고문은 1950년 발발한 6·25전쟁에서 종군사진가로 활동했다. 육군 보병 제7사단에서 군무원 자격으로 전투 기록 사진을 찍었다. 24일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사무실에서 만난 이 고문은 전쟁 발발 64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렸다. 당시는 꽃다운 젊은이들의 피가 한반도를 붉게 물들이던 때였다. 전장에서 마주친 참혹한 광경들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자신이 찍어 준 어느 병사의 사진이다.
1953년 강원 중부전선에 있을 때였다. 한 병사가 카메라를 보고 그에게 다가왔다. “아버지에게 보낼 사진 한 장 찍어주실 수 있습니까?” 병사는 지리산 골짜기에서 아버지와 단 둘이 숯을 구우며 살았다. 가난한 형편에 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입대한 뒤 처음으로 한글을 배웠다. 혼자 남은 아버지께 처음 편지를 썼는데 같이 보낼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이었다. 병사는 “이렇게 훌륭한 군인이 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며 군복 주머니에서 돈 몇백 원을 꺼내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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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까운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요. 어린 병사도 많았고 훈련도 제대로 못 받은 우리 국군이 얼마나 용감했는지….” 이 고문은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눈앞에서 적군의 공격으로 즉사한 아군의 참혹한 시신, 혹한에 동상 걸린 발로 행군을 계속하던 병사들의 모습을 목격했다. 적군의 습격에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면서 국군의 훈련하는 모습과 생활상 등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전쟁이 끝난 뒤 1955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사진기자로 활동했으며 동아일보 사진부장, 월간 ‘사진예술’ 창간 발행인 등을 역임했다.
다음 달 5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송파구 위례성대로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 ‘먼 역사 또렷한 기억’에서 그의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