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녕 논설위원
전 의원은 원내대표에서 물러나는 날 작심한 듯 기자회견을 통해 그 얘기들을 다 쏟아놓았다. “원칙만 주장하려면 시민운동을 해야지 정치하면 안 된다” “의회주의를 온건타협주의나 강경주의의 반대로 보는 것은 과거 반독재 투쟁 시절의 낡은 프레임이다” “우리의 주장과 원칙만이 아닌 상대의 주장과 원칙도 고려해야 한다” “서로 다른 민의(民意)가 국회에서 충돌하고 타협하는 게 정치다”….
새정치연합은 타 정당들에 비해 인적 구성도, 이념의 스펙트럼도 다양한 편이다. 수도 없이 합종연횡을 되풀이한 결과다. 그러다 보니 여느 조직과 마찬가지로 응집력이 강하고 색깔이 분명한 강경파 의원들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다. 더구나 강경파는 좌파 시민사회단체 같은 외부의 응원군들과 긴밀하게 연계돼 있어 세력도 막강하다. 당의 중진이나 원로들도 이들 앞에서는 입을 닫는다. 말해봤자 씨알도 안 먹히고 괜히 위신만 깎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온건파 지도부가 무슨 수로 제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강경파는 지금도 “진보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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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년 전 ‘여야 분단정치’라는 제목으로 여야 원내대표가 남북대화 하듯 하지 말고 무슨 일이 있든 없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만날 것을 촉구하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서로가 각각의 스피커를 통해 주의주장을 쏟아내는 것보다는 자주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다 보면 타협점을 찾기가 쉽다. 이제라도 여야의 이완구, 박영선 원내대표가 이달 9일 첫 회동을 시작으로 매주 월요일 만나기로 한 것은 다행이다. 당장 큰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성급하다. 지속성이 중요하다. 덧붙여 서로 상대를 진심으로 존중해야 한다.
비빔밥의 재료는 가지가지다. 맛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양념을 첨가해 함께 잘 버무리면 색다른 맛의 밥으로 만들어진다. 정치도 같은 이치다. 양념을 넣고 버무리는 과정이 곧 대화와 타협이고, 그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여야의 원내대표다. 지금의 원내대표는 과거 제왕적 당 총재의 대리인 노릇이나 하던 원내총무가 아니다. 국민의 대리인인 국회의원들이 뽑고 그들을 대표한다. 2003년 국회 중심의 의정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처음 도입했던 그 취지를 이제라도 제대로 살려야 한다.
대통령의 생각도 달라져야 한다. 대통령의 권력은 인사(人事)와 정책이 핵심이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야당의 협조 없이 일방적으로 관철하기 어렵다. 그렇게 세상이 변했음을 지금 이 순간에도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소통과 통합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도 높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여야 지도부와 만나 담소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정치의 분위기를 확 바꿀 수 있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