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 모아 콘텐츠기업 지원” 출범… 전직관료들 이사장-이사 맡았지만 10%도 못모으고 운영비만 바닥내
1000억 원을 모아 영세 콘텐츠기업을 지원하겠다며 지난해 출범한 한국콘텐츠공제조합의 파행 운영이 논란이 되고 있다. 돈은 목표의 10%도 못 모은 채 전직 관료들을 고위급으로 두고 수십억 원의 국민 혈세를 펑펑 쓰는 것을 두고 ‘관피아’의 폐해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비판이 나온다.
콘텐츠조합은 지난해 10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화려하게 출범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김종민 이사장은 “자조 자립의 문화새마을운동이 시작됐다”며 “3년 동안 1000억 원을 모아 대출 및 보증 지원을 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국정홍보처 출신으로 문화부에서 고위 공무원(1급)을 지낸 이염 전 아리랑국제방송 경영본부장이 상근 전무이사로 합류했다.
하지만 현재 실적은 실망 그 자체다. 지금까지 모인 돈은 총 72억 원으로 출범 당시 60억 원에서 고작 12억 원 늘었다. 그중 30억 원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경품용 상품권 수수료에서 낸 것이어서 간접적으로 국민이 부담한 셈이다. 직접 모은 돈은 네이버가 낸 30억 원, 조합사들이 낸 12억 원이 전부다.
▼ 재원 부족한데도 거액 홍보용역 등 무책임 발주 ▼
‘관피아’ 콘텐츠공제조합
사정이 이런데도 당초 목표 1000억 원 운영을 기준으로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람을 뽑느라 운영비로 받은 국고보조금 30억 원을 대부분 써 버린 상태다. 조합 안팎에서는 ‘이러다 곧 문을 닫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지만 조합 측은 지난달 1750만 원어치의 장비 구입 공고를 내는가 하면 이달 초 6400만 원짜리 홍보대행 용역 공고를 올리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를 두고 “국고보조금 반납 기한(6월 말)이 다가오자 무책임하게 써버리는 것 같다” “고위 공무원 출신이 있으니 정부에서 망하게 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이에 대해 조합 측은 “국고 지원을 요청할 때 사업계획서에 포함돼 있던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재원 조달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없이 ‘일단 문을 열고 보자’는 식으로 출범한 것이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조합 관계자는 “정부가 목표액의 절반(500억 원)은 지원해 줄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문화부는 지난해 기획재정부에 대출 및 보증재원으로 240억 원을 요청했지만 기재부가 “사적 단체에 공공재원 투입은 불가하다”며 전액 삭감했다. 기대했던 금융권이나 대기업의 출자도 지지부진하다. 조합 관계자는 “성사된 곳은 물론이고 지원 의사를 밝힌 곳이 한 곳도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콘텐츠 업계에서는 “괜히 헛물만 켰다” “전직 공무원들 자리만 만들어 준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온다.
김재형 monami@donga.com·장원재 기자